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Home LOGIN JOIN
  •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 노무현광장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home >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새소식

[2주기 추도사] 민족사에 영원히 사는 우리 대통령

2011.05.23

민족사에 영원히 사는 우리 대통령

-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도사




세월이 무상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가신지 어느덧 2주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전직 대통령의 급작스런 하세는 온 세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안타깝고도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퇴임 후에도 이 나라의 보통사람들이 그렇게도 좋아하고 따르던, 그리고 전직 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젊었던 분이 현직에서 물러난 지 불과 1년여 만에 그렇게 홀연히 가셨으니 세상이 어찌 경악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불의의 소식을 듣고 그저 망연하기만 해서 할 말을 잊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물러나신 후에도 재직기간의 실적을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 자료들을 준비했던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 일조차 이루지 못하고 가신 일 또한 앞으로 우리 역사의 올바른 서술을 위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의 치세를 정리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이 남을 뻔했는데 말입니다.

한 나라의 통치권자는 한 치의 가림 없이 온 몸으로 역사 앞에 서게 마련이며, 한 정권에 대한 최고 최후의 평가는 결국 역사가 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무어래도 역사 앞에 정당한 정권만이 옳은 정권이며, 역사 앞에 떳떳한 집권자만이 당당한 통치자인 것입니다.

반세기 동안이나 국권을 빼앗겼다 되찾은 뒤에 또 문민독재와 군사독재를 겪어야 했던 우리 사회가 그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당연한 방향은 정치-경제-사회-문화면의 민주주의 발전이며, 불행한 분단민족사회로서의 당면과제인 평화통일사업의 추진 그것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국민의 정부 뒤에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성립된 것은 남북을 막론한 우리 민족사회 전체를 위해 크나큰 축복이었습니다. 노 대통령께서 취임하던 날 마침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일로 평양에 있었습니다만, 북녘 요인들도 노 대통령 참여정부의 출범을 민족사회의 앞날을 위해 크게 기뻐해 마지않았습니다.

세계 유일 분단민족으로서의 우리 민족이 21세기의 출발점에서 지향해야할 역사적 과제는 분단이란 취약조건 아래서나마 민주주의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남북관계에서 평화주의를 정착시킴으로서 동아시아평화와 나아가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참여정부가 그 같은 시대적 과제를 충실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수행해내었음은 앞으로의 역사가 충분히 입증할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누가 무어래도 남북대결의 20세기 민족사를 청산하고 평화통일의 21세기 역사를 열어가는 그 맡은바 시대적 책무를 충실히 다한 정부였습니다.

참여정부 5년간의 실적이 역사로 등재될 때는, 이 기간에 국민 개개인의 권한이 신장되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성장을 이루면서도 분배와 복지가 강화되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그 같은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바탕으로 하여 만민평등을 지향한 사회적 민주주의가, 그리고 사상의 자유가 확대된 문화적 민주주의가 크게 신장되었음이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분단민족사회 정권의 또 다른 절대과제인 평화통일부문에도 참여정부의 업적이 크게 기록될 것이 확실합니다. 6․15남북공동선언으로 국민의 정부가 열어놓은 민족통일의 길을 활짝 더 넓힌 것이 참여정부였습니다.

6․25전쟁의 발발로 인해 적대될 수밖에 없었던 남북관계가 6․15공동선언을 통해 동족관계로 환원되기 시작했지만, 참여정부에 의한 10․4남북합의가 그대로 시행되었다면 남북관계는 더 확실하고 더 돈독한 동족관계를 굳혀갔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참여정부 시기의 남북관계 발전에 의해 개성공단이 준공되고 오랫동안 끊겼던 남북철도가 연결되었으며 남북 사이의 육로관광길이 열렸고, 어느 때보다도 남북 사이의 인적 왕래가 급증했습니다. 그 때문에 휴전선은 군사대결선 내지 남북분단선의 성격이 약화됨으로서 국토의 통일이 현실적으로 착착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분단과정의 3단계, 즉 국토분단과 국가분단과 민족분단 중 민족분단과 국토분단이 급격히 해소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북 사이의 적대관계 및 대립관계가 해소되고 화해와 협력이 강화됨으로서 민족통일이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남북 동족들의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국토통일이 실제로 이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즉 민족통일과 국토통일과 국가통일 중 민족통일과 국토통일이 국민의 정부에 이은 참여정부에 의해 실제로 급격히 추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앞으로의 우리 역사 위에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업적으로 뚜렷이 그리고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위상과 업적을 말할 때 우리 역사 위에 영원히 빛날 또 하나의 위대한 치적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지난 어느 정권도 하지 못한 과거청산 작업의 추진이 그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사회가 한때의 실수로 타 민족의 강제지배를 받았거나 독제권력의 횡포를 당했다면, 그 기간을 통해 민족을 배반하고 외적의 지배에 협력했거나 독제권력에 동조해서 반역사적 행위를 자행한 자들에 대한 응징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역사적 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신원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회가 미개사회가 아닌 문화민족 사회라면 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당선자 때부터 역사적 과거청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역사학자들에게 협조를 요구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탄핵파동’이 오히려 순작용을 해서 의회가 민주세력 중심으로 구성됨으로서 각종 위원회를 두어 과거청산 작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직한 정권은 올바른 역사와 그 궤도를 같이 하는 것임이 증명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청산은 해방 후 처음 성립된 정부가 당연히 해야 했고, 독재정권기간의 반민주행위자에 대한 청산은 민주화 후 처음 성립된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과제였지만, 그렇지 못하고 결국 참여정부가 그 모두를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역사의식 및 그로 인해 이루어진 과거청산 작업은 우리 민족사 위에 특별히 기록될 것입니다.

그 같은 참여정부의 소신에 찬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직선으로만 나아가지 못하고 굴곡이 있게 마련인 점이 안타깝습니다. 하기야 역사가 직선적으로만 나아갔다면 그 많은 정력과 희생이 바쳐진 인류의 역사가 아직 이 단계에 있겠습니까만….

참여정부 5년간에 수립된 업적이, 그리고 그 역사가 각 부문에서 정체되거나 훼손되거나 후퇴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10․4남북합의가 전혀 이행되지 못함으로서 평화적 민족통일과 국토통일의 길이 일시나마 막혀버렸음이 대단히 걱정되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소신 또한 확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걸어오신 길은, 그리고 재직기간에 이루어놓은 그 업적은 누가 무어라 해도 민족사적으로나 세계사적으로 올바르고도 떳떳한 길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앞으로 성립될 올바른 역사노정에 선 정권들에 의해 반드시 계승될 것이라 확신해 마지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셨지만 님의 그 고귀한 뜻은, 그리고 그 빛나는 업적은 우리 역사 위에 영원히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도 소탈한 인품으로 비쳤던 님은 민족사 위에 영원히 사는 우리 대통령입니다. 모든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편히 잠드소서. 거듭 거듭 명복을 빌어 마지않습니다.


2011년 5월 23일
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 강만길


※ 강만길 前 위원장은 노무현재단 고문입니다.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

강만길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저술과 함께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여 왔다. 특히 해방 후에도 역사학계에서 주류를 형성하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3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사학과·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르쳤다. 퇴임 후 상지대 총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1972년 유신 뒤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각종 논설문을 쓰면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알려졌다.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항의집회 성명서 작성 및 김대중으로부터 학생선동자금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해 고려대에서 해직되었고, 1983년 복직하여 강단으로 돌아온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기간 통일고문회의 통일고문을 맡았고 현재 <노무현재단> 고문이다.

강 전 위원장은 진보주의 학파에 끊임없이 이론을 제공해준 학자로서, 근·현대사 문제나 친일청산,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항상 그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분단극복을 화두로 삼아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근현대사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민족협동전선, 좌우합작운동 등 통일민족국가 건설운동 연구에 열의를 쏟다가 분단 극복을 위한 새로운 사론을 내놓은 것이다. 특히『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 등을 통해 냉전논리 하에서 분단극복의 역사관을 제시하여 당대 지식인들에게 큰 공감을 샀다.

또한 좌익계열의 독립운동을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비로소 좌우합작이 독립운동사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2007년부터 재단법인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을 설립해 젊은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전 글 다음 글 목록

등록
74 page처음 페이지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