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노무현 대통령 탄생 65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봉하음악회. 벌초 날인데도 많은 시민들이 봉하마을을 찾아주었다. 특히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았다. 오후 일찍감치 주차장이 만차되자 마을 입구에서부터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먼 거리인데도 생전의 대통령님을 만나러 온 듯 활기가 넘쳤다. 무대 뒤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출연진부터 멀리 전남 영광에서 왔다가 공연 한 편 못보고 돌아선 안타까운 방문객의 사연까지, 이날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모저모를 전한다.
◯ 밀양역에서 만난 김수안·김의영 오전 밀양역에서 진영행 환승을 위해 기다리던 2002년 대선 자원봉사자 김의영씨를 만났다. 그 추운 겨울 희망돼지를 따 동전을 세고 명동 거리에서 차가워진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며 노란풍선을 나눠주던 그 대학생이 훌쩍 직장인이 되어 처음 봉하마을을 찾았다. 김의영씨는 “그동안 취업이다 뭐다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못했다. 이렇게 늦어서 (대통령님께) 죄송하다”며 “불교 정토회 모임에서 만난 선배(김수안씨)가 먼저 제안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10번 버스에 올라 봉하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의영씨는 “저기 노랑개비들 보니깐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당선된 이후로 계속 돕지 못한고 손을 놓아 버린 게 너무나 후회된다”고 토로했다. 이윽고 헤어지며 의영씨는 “그때 그분들(자원봉사자)을 꼭 다시 만나고 싶다”며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자신의 사진과 사연을 엮어 올려줄 것을 부탁했다.
◯ 네팔인 아버지 쑤베레와 딸 쓰레‘보리울의 여름 OST’곡으로 첫 무대를 장식한 창원 다문화 어린이합창단(지휘자 박찬). 5세~12세까지 37명의 어린이로 구성된 합창단원 중 제일 막둥이인 ‘쓰레’는 네팔인 엄마와 아빠를 두고 있다. 아빠 쑤베레씨는 2008년 10월 노 대통령의 초청으로 봉하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께서 ‘미안하다’ ‘당신이 재직하실 때 좀 더 챙겨드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씀하신 게 항상 기억에 남아 있다”라고 회고하며 뚜렷한 발음으로 “우리 딸애가 이런 자리에 축하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 유뜨락 밴드(부산 시민광장)2년 전 부산 시민광장에서 자체적으로 모여 결성한 유뜨락 밴드. 지난해에도 봉하 작은음악회 무대에 서선 이들은 “단 한 곡이라 아쉽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노래를 부르고 내려온 이들에게 한 곡 더 하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묻자 ‘박선주의 귀로’를 꼽으며 “내년 봉하 음악회에 다시 초청받을 수 있게 많이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피아니스트 이희아 무대에 서기 전 연도(행사 전 기도를 하는 천주교 의식)를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그는 지난해와 올해 두 번 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추도식 무대에 섰다. 하지만 봉하마을 공연은 이날 처음이다. 이희아씨는 “저도 노무현재단 후원회원”이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2005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 청와대에서 열린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 음악회에서 대통령님을 처음 뵈었다. 그 때 마지막에 대통령과 손을 잡고 같이 ‘사랑으로’를 불렀다. 그 따뜻한 미소가 늘 가슴에 남아 있다.”하지만 이희아씨에게 노 대통령은 개인적인 사연 이상의 의미가 있다.
“노 대통령은 장애인 복지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들 중 가장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 잘 아시다시피 지금 정부는 반대로 장애인 예산을 깍고 있다. 이 연도를 바칠 때면 늘 대통령님이 생각난다. 그 분의 세례명은 유스토다. 언제나 기도하고 있다.”
◯ 소프라노 황지연·테너 정능화공연 중간에 내려와 다음 무대를 준비 중인 황지연
·정능화씨를 만났다. 힘든 듯 땀을 닦고 있던 이들은 “우선 무대 수준에 많이 놀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국립오페라단 단원인 이들은 “평소 야외무대에 많이 서지만 봉하음악회처럼 세련된 세팅과 관객 몰입도는 처음”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높였다.
황지연씨는 “무대에 서면 (조명 때문에) 앞이 잘 안보인다. 흘깃흘깃 보인 관객들의 표정에서 오늘 무대의 의미가 다시 느껴져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뜨거운 박수를 느낀 것은 처음이다. 노래하는 사람이 더 잘하고 싶은 무대라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 경남 약사회 경남 약사회에서 공연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드링크 2000개와 비상 약품을 나눠 주었다. 공연 중 무릎을 다친 어린이가 업혀 오자 응급 치료도 해주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시려고 했던 세상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나왔다”며 “이 자리에 봉사활동 온다고 하니깐 많은 약사님들이 후원해 주었다”고 말했다.
◯ 전남 영광 추산부락에서 온 송영림·이춘노
공연이 끝난 후에도 공연장 입구에서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웠던 송영림
·이춘노씨.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오전 6시부터 부리나케 서둘러 왔는데 정작 공연 한편도 못 봤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너무 차가 막힌데다 진영에부터는 걸어 왔어. 이제 도착해 한 편도 못봤네. 막 죽겠어. 내년에는 더 일찍 와야겠네.”
봉하마을에 처음 온 이들은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찜질방에서 자야겠다며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 정은숙 교수봉하음악회 다음날 아침. 성악 팀과 가볍게 산책을 하던 정은숙 교수를 만났다. 정 교수는 대통령님 생신 축하 무대가 “무사히 잘 끝난 것 같다”며 우선 안도를 표했다. “음악회다운 음악회였다. 만난 사람들이 공연이 좋았다고 하니 기분 좋다.(웃음) 가장 만족한 부분은 마이크와 스피커다. 우리 같은 성악가들은 소리에 민감한데 최상의 세팅을 해줬다. 그리고 봉하에 오시는 우리 관객들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만큼 공감이 뛰어난 분들임을 다시 확인했다.”
※ 사람사는 세상 동호회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 이병철 회원은 이날 대전에서부터 도종환 이사의 일일 운전사가 되길 자청했습니다. 이번 봉하음악회를 위해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 주신 60여 분의 자원봉사자들께 다시 한번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