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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토요강좌②] 도종환 “바람에 머리칼과 아픈 영혼을 맡기자”

2013.06.12

하나 둘 서서히 고개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노무현 대통령 묘역 앞.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남자의 등을 봉하의 초여름 볕이 물끄러미 비추고 있었다. 뒷모습의 주인공은 시인이자 지난해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참배를 함께한 사람들이 그를 바라본다. 그의 머리 위로는 어떤 생각이 흐르고 있을까. 노 대통령은 도종환의 시를 좋아했다. 퇴임 후 사저에 걸었던 시 ‘담쟁이’는 2009년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 내렸다.

대통령과 ‘눈물’ 대화

2003년 대통령 취임식 전야제에서 축시를 읊고, 2009년 영결식 노제에서는 마지막 배웅을 하며 조시를 지었던 도종환. 그 속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꼭 감은 그의 두 눈 아래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는 대통령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위로를 건넨 것일까 위로를 받은 것일까. 한참을 흐느껴 우는 그에게 누구도 말을 걸지 못했다.

6월 둘째 주 토요일인 8일 봉하는 새벽부터 소란스러웠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 캐릭터논 모심기에 이어, 정오께는 태평소 소리가 사방에 쩌렁쩌렁 하게 울려 퍼지고, 친환경쌀 방앗간 앞마당에는 과일과 돼지 머리가 올라간 고사상이 놓였다.

볼이 발그레한 청소년들로 구성된 8명의 농악대는 힘차게 상모를 돌리며 풍년기원제의 흥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옆 최근 지은 ‘친환경바이오센터’ 2층 교육장에서는 개장 후 첫 손님, 봉하 토요강좌의 두 번째 손님들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한 해 농사를 부탁하며 새끼 오리들을 논에 보내고 난 후 오후 2시경에 이르자 교육장은 170여개 좌석은 물론 앞, 뒤 통로까지 도종환 시인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여름 더위로 땀줄기가 되게 느껴지기도 하련만, 수강생들의 눈빛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개론은 인생학, 각론은 상실학

“‘노무현과 담쟁이‘는 주최 측이 지은 제목이구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습니다.(웃음)” 그가 띄운 제목은 ‘시에게 길을 묻다.’ “인생이 학교라면 우리가 배워야 할 필수 과목은 무엇일까요?”

숨을 고르며 시인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가벼운 듯, 묵직한 듯 툭 질문을 던졌다. 호스피스 운동의 창시자이자 ‘인생수업’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된 강연은 청중들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하나가 행복입니다. 두 번째가 사랑입니다. 셋째는 상실•슬픔이고 넷째는 관계, 다섯째는 두려움입니다.”

개론은 인생학, 각론은 상실학이었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인생수업’ 이후 ‘상실수업’을 쓴 것처럼 시인은 슬픔이 변하는 다섯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천천히 화두를 옮겨갔다.

12월 19일 이후 쓴 시

5월을 지나 6월에야 봉하를 다시 찾은 도종환. 대통령을 대신해 방문객들을 만나는 자리에 서게 된 그는 어떤 말을 나누고 싶었을까. 금배지를 달아도 시인은 역시 시인. 그는 시로 소통했다. 지난해 12월 19일 이후에 쓴 다섯 편의 시가 시인의 목소리를 타고 귀로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에서도 질 때가 있고
마지막 성 하나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운명도 있다는 걸...” <이릉대전>

“약초를 알게 한 것이 상처와 고통이었듯
패배를 딛고 처절하게 한 발 한 발 걸어 나갈 것...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보고
바람에 머리칼과 아픈 영혼을 맡길 것
마음의 안부를 물어볼 것
그리고 창을 열 것..” <슬픔의 통로>

옆에 앉아 조용히 등을 도닥이는 손처럼, 손수건을 건네주는 친구처럼 그의 위로는 따듯했다. 한 편 한 편의 낭독이 끝날 때마다 촉촉한 눈가를 닦는 손길도 늘어갔다. 그가 털어놓은 자신의 속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였다. 한참 속을 풀어준 시인은 다시 기운을 내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노무현은 없지만, 우리가 봉하에 오는 이유

“우리가 꿈꾸는 그 날은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향해서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고 가장 사람다운 모습 아니겠습니까.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경우도 있겠죠. 정의와 원칙이 바로서는 세상, 특권과 반칙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서로 평화롭게 사는 세상, 가진 것을 서로 나누고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는 세상. 실질적 민주주의인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세상. 옳기 때문에 우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노무현은 없지만 이것이 우리가 봉하에 오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마음의 벽, 기득권의 벽, 이기주의의 벽, 차별의 벽을 넘어 이제 우리 마음에 담쟁이를 걸자며. 손에 손을 잡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벽을 넘는 담쟁이, 절망적 상황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가 되자며 시인은 말을 맺었다. 서늘하고 뜨거운 공기가 강연장을 채웠다.

기념촬영 뒤 참배를 위해 묘역으로 이동하는 길. 부산에서 온 회원분께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벌써 다 끝났냐고 묻는다. 토요강좌를 들으러 봉하에 처음 오셨다며, 초행길이라 버스도 오래 기다리고 도착해보니 시간이 지나있었다며 말씀 중에도 속 타는 더위에 부채질이 그치지 않는다.

15일엔 신경민 의원 ‘TV 너머 진실’ 강연

대중교통을 통해서 진영에서 봉하로 오는 길이 더 편해지면 좋으련만, 올해가 끝나면 내년이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7, 8월 한여름에는 더위로 인해 마지막 주 토요일에만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9월에는 다시 매주 대화마당이 열릴 수 있길 희망해본다.

셋째 주 토요강좌의 주인공은 신경민 의원. MBC에서 30여년 기자로 활동했으며 2008년부터 2009년까지 9시 뉴스데스크 앵커로 진행을 맡았다. 뉴스의 끝을 맺는 클로징 멘트에서 소신을 담은 대담하고도 직설적인 멘트를 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외압으로 387일 만에 앵커에서 하차했다. 그가 하차하던 2009년 4월 13일 뉴스데스크에서의 마지막 클로징 멘트가 유명하다. 앵커에서 강제 하차한 뒤, 그가 정말 하고 싶었지만 못해서 아쉬웠던 클로징 멘트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였다고 한다. 그 클로징 멘트는 22일 봉하 토요강좌에서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장소는 묘역 옆 잔디밭이다.

"회사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 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1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저의 클로징 멘트를 여기로 클로징하겠습니다." (신경민 의원의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 마지막 클로징 멘트)

 

영상으로 다시보는 도종환 시인의 ‘시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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