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24일 서울 성북아트홀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제7기 시민주권 강좌.
강원도에서 서울로 상경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매주 목요일은 참 바쁜 날입니다. 학교 수업도 많거니와 아르바이트까지 있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참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11월 한 달, 매주 목요일은 항상 가슴이 뛰었습니다. 목요일 저녁 7시 30분이면 <노무현 시민학교> 제 7기 시민주권 강좌 ‘나는 시민이다’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민주권 강좌의 마지막은 정연주 KBS 前사장이 해주셨습니다. 한때 언론인을 꿈꿨던 나에겐 40년을 언론계에서 힘쓰신 정연주 사장의 강연 소식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던 언론계에 대한 동경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언론부터 바꿔라.” 정연주 사장이 하려는 이야기는 이 강연 제목에 모두 담겨져 있는 듯합니다. 정권 혹은 권력이 국민의 눈과 귀, 생각을 장악하는 데 있어 언론이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으니까요.
박정희 시대와 이명박 시대의 ‘언론’강연에 대한 큰 기대를 안고 기다렸습니다. 희끗한 머리!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도 TV서 보던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100분여의 강연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재미와 감동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정연주 사장의 재치 있는 입담에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정연주 사장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사실보도’와 시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는 ‘비판 기능’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잘 이뤄지면 우리 사회의 고귀한 자산으로서 여러 의견이 모이고 소통하며 사회가 통합되는 좋은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권력의 앞잡이가 됩니다. 이에 관련해 과거 동아일보 기자 시절의 이야기와 KBS 사장 재임시절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의 실태 등을 경험을 통해 재미있게 강연해주셨습니다.
초임 기자시절이던 1970년대, 언론은 위의 두 가지 기능을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언론은 시민들의 의견과 저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기자 정연주는 모교 시위농성을 취재하러 갔다가 ‘개와 기자는 접근 금지’라는 팻말을 보고 크게 절망하고 부끄러웠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언론은 제 기능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습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본연의 임무보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펜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단체인 ‘프리덤 하우스’에서 각 나라의 언론자유점수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32점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 세계 76위에 해당하는 점수이며, 우리나라는 ‘언론자유국’에서 ‘언론부분자유국’으로 강등 평가 되었다고 합니다. 프리덤 하우스는 이렇게 점수를 매긴 이유로 ‘언론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연주 사장은 “언론의 90% 이상이 정권의 편을 드는 이런 시기는 역사상 처음이라며 언론인들은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37%의 절대보수를 뛰어 넘을 희망 ‘청년’KBS 사장 재임시절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사장에 임명되고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님과 만났을 때, 대통령님께서는 재임 기간에는 KBS 사장과 검찰총장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후 정말로 정연주 사장은 노 대통령님께 한 번도 전화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검찰의 중립을 지키겠다는 ‘우리 대통령님다운’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였습니다.
정연주 사장은 학벌이 중요시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무척이나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KBS 재임기간에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이력서에 출신학교와 지역을 뺀 ‘블라인드 면접제’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인재들이 뽑혔다고 하더군요.
이와 관련해 지난해 큰 인기를 모았던 시트콤 이야기도 곁들였는데, ‘빵꾸똥구’에 대한 방통위의 경고 조치, 미네르바, 진보성향의 연예인들에 대한 탄압 등을 예로 들며 대한민국 언론을 ‘빵꾸똥꾸’로 정의해 많은 공감과 웃음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절대 바뀌지 않는 37%의 보수 이야기’는 가장 크게 저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어떠한 사회적·정치적 상황에도 바뀌지 않는 37%의 국민.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때도,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하셨을 때도,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으로 한 총리를 옭아맸던 검찰수사에서도 ‘절대보수층’의 지지 수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연주 사장은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20대로 상징되는 ‘청년들의 힘’입니다. 그들은 대다수의 중장년층처럼 조중동 등의 수구언론에 얽매여 있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에 익숙해 있으며, 최초의 정치참여였던 지난 대선 이후 MB정부의 실체를 가장 강렬하게 체감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이는 20대의 정치 성향도 희망적인 미래를 예측하게 합니다. 정연주 사장님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바꾸고, 내 꿈을 이루고 싶으면 세상에 참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강연의 마무리는 도종환 시인의 시(詩) ‘담쟁이’ 낭독이었습니다. 정연주 사장의 목소리와 말투에는 민주주의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결연한 희망의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는 마지막 구절은 정연주 사장의 가슴이 쏟아내는 외침 같았습니다. 철벽같은 이 시대의 담장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힘이 모이면 넘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노무현 시민학교 졸업생이 된 지금…”이렇게 <노무현 시민학교> 제 7기 시민주권 강좌 ‘나는 시민이다’의 모든 강좌가 끝이 났습니다. 이번 강좌는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는데, 소중한 인생선배님들 덕분에 저의 20대를 의미 있게 채워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강좌를 통해 <노무현 시민학교> 졸업생이자, 노무현재단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서점에 들려 이번에 강연하신 선생님들의 책을 한권씩 사서 읽고 있습니다. 이번 시민학교를 통해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저의 삶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걸 느낍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치는 결국 국민들의 의식만큼만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 같이 정치나 사회에 별다른 관심 없는 20대 대학생에게도 이번 강좌처럼 정치나 사회에 대해 어렵지 않게 접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면, 우리나라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 사람사는 세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좋은 강연을 해주신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여균동 영화감독,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정연주 전 KBS 사장, 좋은 음악으로 감동을 주신 강허달림님, 그리고 매주 강연준비에 노력해주신 노무현재단 스태프 여러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제 삶의 가장 귀한 기회를 만들어 주신 노무현 대통령님께 감사합니다. 당신이 생각하신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도, 우리도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