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4
파트리크 쥐스퀸트의 ‘콘트라베이스’를 재공연함으로써 명계남이 전업 배우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명배우로서의 역량을 부정해서가 결코 아니다. 내게 그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명실상부한 봉하지기 상주의 이미지로 남았기 때문이다.
2010년 말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을 부산으로 내려가 관람했을 때도 나는 온전한 배우로서의 만남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느꼈을 분노와 좌절의 늪에 나도 함께 빠져 허우적대고 싶었을 뿐이었다. 일견 그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목소리엔 허망함과 고단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때 속울음을 삼키며 그의 연극을 보았던 기억이 아프다.
명계남의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를 보기로 결심한 것은 순전히 노무현재단의 홈피에 실린 단체관람 공고 때문이었다. 동류항의 관객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경주에서 KTX를 타고 6월 20일 저녁 8시 대학로 아트원시어터로 배우 명계남, 그를 만나러 갔다.
삶, 외롭고 낮고 쓸쓸한
무대 중앙에 거대한 악기 콘트라베이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던 그가 질문했다. “콘트라베이스는 ㅇㅇㅇ(이)다. 빈칸을 완성해 본다면?” 나는 ‘명계남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콘트라베이스’ 공연으로 연기 인생의 변곡점을 표시해왔다는 배우 명계남. 오케스트라 구성에 필수적이며 거대한 몸집을 뽐내는 악기이지만 오케스트라 계급구조상 늘 뒷자리 구석을 차지하고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콘트라베이스. 독주보다는 협주에 어울리는 악기. “사회 구성원 중 가장 거대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목소리 한번 크게 내는 것이 어려운 소시민의 삶은 콘트라베이스의 낮은 울림과도 같다”고 말하며 ‘사람사는세상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아 온 명계남.
프롤로그와 본 공연의 경계선이 모호한 상태로 그의 1인극이 시작되었다. 35세의 시립교향악단 콘트라베이스 주자를 연기하는 그의 무모함은 차라리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애환과 왜소한 비중을 푸념하는 대사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바그너 등을 넘나드는 현학적인 언어들. 중간 중간 틀어주는 음악으로 막간의 휴식을 관객과 공유하는 장면 구성.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 “그냥 살지. 왜? 그냥 살아있지…”라고 오열하던 그의 모습까지 자꾸만 떠올라 극에 몰입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참 터무니없는 일이다. 배우의 명연기를 모독하는 일이다. 그의 현실, 삶에 대한 공감이 너무 깊어 막상 극중 연기에는 공감이 부족한 걸까.
관객 노무현과 배우 노무현의 만남
극중 주인공은 메조소프라노 가수 ‘사라’를 온 열정을 다해 사랑한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오케스트라 계급구조의 상층부와 어울리며 이 연주자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급기야 그는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불협화음을 자초하여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사랑고백을 하리라 결심한다. 시립교향악단에서 파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사라’는 깨어있지 못한 무개념 시민을 상징하는가. 그의 짝사랑은 참으로 눈물겹다.
객석을 가득 메운 같은 색깔의 관객들을 만나는 시작부터 명계남은 한껏 들떠있는 듯했다. 극의 흐름은 부차적이고 그냥 그렇게 두어 시간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운 배우와 관객의 교감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관객들에게 친필 서예작품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자’를 비롯해서 갖가지 선물들을 줄줄이 나누어 주었다. 제사 참례한 친지들에게 음복 후 남은 음식을 아낌없이 싸주는 집안의 장손처럼. 그리고 기념 촬영에 기꺼이 응하며 아이처럼 흥겨워했다. 이제 그는 관객 노무현들을 만나고 관객들은 배우 노무현을 만나고 있었다. 그의 외로움과 관객들의 외로움이 그렇게 치유되고 있었다.
글 : 회원 ‘포터’님 / 사진 : 회원 ‘미트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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