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6
땀이 난다. 누군가가 등을 막 떠밀고 있다.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꿈을 꿨다. 서울행 버스 안이었다. 피곤했는지 산따라 일행은 모두 죽은 듯이 의자에 머리를 파묻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잠깐 꿈을 되새겨 보았다.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마엔 식은땀이 묻어있다. 그러나 또렷이 생각나는 것은 그곳이 분명 봉화산 부엉이 바위였다는 것이다.
3월 23일 토요일. 노무현재단 산행 동호회인 ‘산따라’에서 노무현 대통령 계신 봉하마을로 시산제 겸 자원봉사를 위해 출발했다. 45인승 관광버스 안에는 31명의 회원들이 앉아 서로 웃음을 머금고 모처럼의 해후를 기뻐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묵사발 회장님의 안내에 따라 돌아가면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들 상기되고 들뜬 모습이었다. 자주 다니는 사람이나 처음 가는 사람이나 모두 봉하마을 방문을 마치 고향방문처럼 여기는 듯했다.
31명의 요리사가 만든 ‘기네스 비빔밥’
얼마나 달렸을까. 괴산 휴게소에 도착하자 일행 모두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놀라지 마시라! 이곳에서 한편의 스펙터클한 쇼가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이 참신하고 창의적인 발상에 놀랐다. 묵사발 회장님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각자 집에서 가지고 온 밥과 반찬 그러니까 각종 나물과 고추장 그리고 참기름을 섞어 비빔밥을 만들고 있었는데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서 그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비빔밥은 31명의 요리사가 참여해 만든 그야말로 ‘기네스 비빔밥’이랄 수도 있겠다. 저녁식사님의 부인인 보름달님과 그 따님들이 만든 주먹밥도 돋보였다. 점심식사를 하는 일행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 묻어 있다.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과 발상에 다시 한 번 탄복했다.
우리는 곧 봉하마을에 다다랐다. 서울서 출발한지 약 5시간 정도가 지났다. 마을에는 이미 많은 관광버스와 함께 참배객들이 도처에 모여 있었다. 년 1백만 명의 참배객이 다녀간다는 귀띔을 듣고는 놀랐다. 날이 갈수록 노짱님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은 참배객을 봉하로 이끄는 것이리라.
숙소를 정한 후 안내를 받아 곧장 노짱님의 묘역에 헌화하고 참배했다. 작은 너럭바위와 1만 5천여 개의 박석으로 이루어진 묘역. 아주 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 달라는 유언에 따른 소박한 묘역이었다. “내 가슴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도 새겨져 있었다. 눈을 감고 잠시 묵념을 하는 동안 가슴은 답답했지만,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심장은 뜨거워졌다.
산 아래에는 작은 잔디밭이 있다. 수구 언론들은 이 잔디밭을 호화 골프장이라고 그렇게 왜곡 보도를 해댔다. 그리고 인근 자연환경과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지붕이 낮게 설계된 사저를 보고 ‘아방궁’이니 ‘노방궁’이니 하며 연일 국민을 선동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나기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굴욕이 계속됐다.
낮지만 높은 명산, ‘봉화산’ 대통령의 길을 걷다
눈앞에 거인처럼 서있는 부엉이바위는 크고 높았다. 노짱님은 저 곳에서 한 마리의 수리부엉이가 되어 하늘로 오른 것이다. 그것은 닫힌 세상을 향한 천 마디 만 마디의 외침보다 큰 뜨겁고 통렬한 날갯짓이었다. 그 날갯짓으로 인해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변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토록 노짱님이 꿈꿔 왔던 ‘사람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 정의로운 세상’에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봉화산 사자바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애불이 누워 있었다. 원래는 앉은 자세였는데 바위가 떨어져 마치 와불(臥佛)처럼 편안히 누운 모습이 되었다. 남쪽이라서 그런지 산에는 진달래와 매화가 흐드러져 서울과 달리 이미 봄이 왔음을 알렸다. 한참을 오르니 정토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이휘호 여사님의 뜻이었다고 한다. 나는 저녁식사님, 쇳덩이님과 함께 위패를 향해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두 분께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 주실 것을 빌면서.
봉화산은 140여 미터의 낮은 산이다. 그러나 정상인 사자바위에 도착하자 봉하마을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묘역과 생가 그리고 유기농 논밭이 잘 정돈되어 깔끔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멀리서 KTX 열차가 마치 뱀처럼 미끄러지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노짱님은 봉화산을 일컬어 ‘낮지만 높은 산’ ‘작지만 명산’이라고 했단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사자바위는 시산제를 지내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였다. 시산제엔 김경수 전 비서관님이 참석했다. ‘신이시어, 노무현 대통령님이시어 굽어살피소서…’라는 다불어님의 독축(讀祝) 소리와 함께 시산제가 시작됐다. 묵사발 회장님과 시샵 다시오는 봄님이 재배를 했고 이어 김경수 비서관님과 많은 회원들이 올 한해도 무탈하게 산행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시산제가 끝나고 음복과 함께 떡과 과일 그리고 돼지 머릿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시산제를 지낸 후 먹는 음복주야말로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챙겨 간 막걸리가 동이나 모두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산행이 시작됐다. 우리는 열을 지어 ‘대통령의 길’을 따라 걸었다.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산수유 꽃 향이 줄지어 따라왔다. 간간히 빨갛게 흐드러진 동백꽃 향도 함께 산행을 했다. 우연이었을까. 산행 중 주영훈 비서실장님을 만났다. 주 비서실장님은 5월에 열리는 ‘유시민과 함께 걷기’ 행사를 준비 차 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봉화산을 노짱님처럼 ‘주름이 많은 산’이라며 산길마다 그 맛과 느낌이 달라 산책할 만한 산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길은 곳곳이 노짱님의 흔적이, 발자취가 남아 있는 듯 했다. 주름이 많긴 많은가 보다. 140미터의 봉화산을 4시간여에 걸쳐서 트래킹을 했으니 말이다. 발바닥이 아플 때 쯤 하산해 노무현 기념관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드디어 기리고 기다리던 시간이다. 저녁식사와 함께 맛난 봉하막걸리를 마실 시간이다. 무엇을 위해 산행을 했는가. 흐흐흐, 회원들 아니 좀 더 정확한 표현을 한다면 술꾼들의 눈에는 총기가 얼굴엔 생기가 온몸엔 혈기가 돌았다. 정식 뷔페로 준비한 식사와 함께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안주는 묵은김치님이 만들었다는 돼지고기 두루치기. 가히 환상적인 맛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13년 봄, 다시 만난 노무현
늦게 따로 온 회원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명보다는 습관처럼 닉네임을 밝혔는데 참 재미있는 닉도 많고 사연도 가지가지 묻어 있다. 더불어도 아닌 다불어, 묵은김치, 저녁식사, 묵사발, 끔찍이도 아닌 깜찍이, 우연히, 소박한밥상, 잠탱이, 해당화…. 이런 닉은 언제 들어도 정감이 간다. 심여수, 다시오는 봄, 대오, 노짱과동시대를, 길천 같은 닉은 생각이 깊고 무겁다. 가정적인 닉도 많다. 현주아범, 고척동마님, 얼리앤설리, 하늘엄마 등이 그렇다. 직업을 의미하는 닉도 있다. 쇳덩이, 수영장친구, 사오장, 충검, 화원이 그것이다. 헌데 그 의미가 너무 심오해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는 닉도 있다. 디케, 소울비치, 코코, 영이, 컴어개인, 호수풍경 등이다. 그러나 그 뜻은 달라도 생각만은 모두 노짱님에게 가 있다는 공통분모가 일체감을 갖게 한다.
한 잔 두 잔 마시니 막걸리를 위해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때쯤 서울에서 함께 온 동물원님이 막걸리와 오리고기를 들고 나타났고, 소울비치님도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대봉으로 만든 곶감을 한 상자 들고 왔다. 이어 노랑버스를 타고 온 순간순간마다님과 이성재님이 와서 막걸리를 거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막걸리처럼 무르익고 열두시가 다 돼서 영농법인 대표로 있는 김정호 전 비서관님이 합류했다. 토론은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유기농법이 왜 필요한지, 봉하막걸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처음엔 반대하던 마을 주민들이 어떻게 친환경농사로 뜻을 모아 모범 농가를 이루고 있는지….
다음날 일어나 물어보니 새벽 세시 반에야 토론이 끝났다고 했다. 나는 두시 경에 졸음을 참지 못하고 들어가 잤다. 서너 시간도 자지 못했지만 우리의 술꾼 아니 토론자들은 다음날 그 모습이 놀라울 만큼 아주 싱싱했다. 술을 덜 먹었나? 크크.
다불어님의 도움으로 코코님과 봄님 그리고 컴어개인님 등이 끓인 굴떡국은 아침 해장에 정말 최고였다. 술이 다 깨는 듯했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자원봉사자 화원님의 지시에 따라 생태연못의 부들을 잘라 나르는 노력봉사를 했다. 오랜만에 신성한 노동을 하니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헌데 오늘 유난히 우연히님이 힘들어 한다. 토요일 영보자애원에 이어 연이틀 자봉을 해서란다. 암튼 우리가 자르고 나른 ‘부들’은 잘 말려서 정자의 지붕을 엮는데 쓴다고 했다. 다음에 왔을 땐 지붕을 한번 올려다 봐야할 것 같다. 내가 날라 엮은 부들이 잘 있는지.
상행길 버스는 편안하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 우리가 꿈꿔 왔던 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불현듯 봄바람처럼 밀려왔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부류들의 지속적인 집권은 많은 것을 퇴보시킬 것이다. 그래서일까 눈을 뜰 수가 없다.
피곤하다. 잠이 온다. 근데 누군가 내 등을 자꾸 떠민다. 나는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곧 절벽 아래로 떨어지리란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한 마리의 수리부엉이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추신 : 여러분 감사합니다. 특히 이 행사를 차질 없이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신 회장님, 총무님, 시삽님 등 집행부를 비롯한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중간 중간 생략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 기억력의 한계로 닉이 빠지신 분들은 너그러이 양해바랍니다. 투병 중이신 다불어님의 빠른 쾌유를 함께 기원합니다.
- 2013년 3월 24일 ‘곰방대’ 이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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