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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아이들만 잘 자라준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다”

2012.02.29

노무현재단은 ‘사랑의 쌀 나누기’를 통해 2010년 2월부터 전국지역아동센터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이글은 성태숙 정책위원장이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의 시설장으로 일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이번 설 명절에 맞춰 진행된 ‘2012 제1차 사랑의 쌀 나누기’를 기념, 나눔에 참여한 사람사는 세상 회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아이들만 잘 자라준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다”

- 아이들의 기특함을 기리는 희망의 노래 ‘전국지역아동센터’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가난한 이들은 힘들고 서럽고 외로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최근에 가장 절절히 다가오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이 절박해지는 까닭은 광풍(狂風)이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일이 때로는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재벌가의 자녀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자녀라는 조건이 아니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불안에 시달려야만 하는 세상이다. 그래도 ‘그래 뭐 우리가 언제 큰 것 바라고 살았어. 적게 먹고 가늘게 살면 되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가져보지만, 실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세상의 잔혹함을 잘 알기에 잠시 달래졌던 마음은 이내 더 크게 흔들리고 만다.

이런 세상에서 지혜롭고 인내심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그래도 오늘의 희망에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녀와 함께 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그래도 이겨내 볼 수 있다는 용기를 새롭게 내볼 수 있을 것이다. 설혹 그런 배우자조차 허락받지 못한 상황이더라도 자식들이 기특하게 자라주기만 한다면, 부모 된 도리로 오늘을 넘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리며 오늘의 고통을 달게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졸업철이 되면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의 마음은 참으로 남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지금이야 예전처럼 온 가족이 졸업식장에 참석해서 졸업한 아이들을 성대하게 축하하는 모습들이 많이 사라져 홀로 된 부모나 조부모 혼자 식장에 참석하는 것이 겉으로는 그리 어색한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로 꼽을 만하다. 그래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 홀로 아이를 키워낸 장함을 기리기 위해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거의 빠짐없이 아이들의 졸업식에 보호자들과 함께 축하의 인사를 하러 가는 경우가 많다.

식장 한 켠에 서면 그 아이와 울고 웃으며 보냈던 6년이나 3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중학교 3년 내내 발음도 어눌하고 난독증으로 아직 제대로 책조차 읽고 쓰기 어려운 아이의 상태를 친구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하였고, 그 중 몇몇 짓궂은 동급생들의 괴롭힘으로 아이는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하였다. 내내 열등감과 분노, 좌절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을 곁에서 위로하고 달래며 부모의 아픔을 함께 지켜봐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지역아동센터에서 미술 시간에 그 아이가 그려낸 그림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에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에 너무도 감사했다.

다른 아이들이 심하게 놀리지만 않았다면 아이는 자신이 남보다 못한 점이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겠다는 듯이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였다. 그런 아이의 성장을 초등 6년과 중등 3년을 함께 지켜보며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지역아동센터의 교사로서 큰 고마움이다. 아이들의 기특함을 지켜볼 수 있도록 허락받은 자리, 그것이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에게 내려진 축복이었고 그것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의 어려움을 이겨내 왔던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견뎌내겠다는 약속, 우리는 지켜야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아이가 자라온 9년의 세월 동안 지역아동센터는 3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모두가 월세나 전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는 대략 절반에 못 미치는 정부의 지원금과 후원, 자부담에 의해 운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전월세가 올라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해 큰 곤란을 겪는다. 지역아동센터가 동네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지역사회에서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는 지역사회 ‘큰 집’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시설의 안정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것은 꿈에 불과한 일이다.

올해 지역아동센터는 정부로부터 아동 19명을 2명의 교사가 돌보는 곳은 월 355만원의 운영지원금을 받게 되고, 29명을 2인의 교사가 돌보면 375만원, 그리고 30명 이상의 아동들을 3명의 교사들이 돌보게 되면 465만원의 운영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운영비는 인건비와 사무운영비 및 아동들을 위한 프로그램비로만 쓸 수 있도록 지출처가 제한되어 있어 시설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런데 2명의 교사가 355만원이나 375만원의 운영비를 받아 센터를 운영하는 경우 운영비의 20% 이상을 반드시 프로그램비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355만원의 운영비를 받게 되면 인건비와 사무운영비로 쓸 수 있는 금액은 284만4천원이 남게 된다. 이 돈으로 각종 공과금과 사무 운영에 필요한 사무용 기기를 구매하고 인건비와 4대보험 및 퇴직금까지 적립하려면 종사자들의 임금은 최저 수준을 향해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다.

다 벌어먹고 살기 어려우니 그리 큰 일이 아니라고 한데도 달리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나 학교 정교사 혹은 보육교사 1급의 자격을 지닌 법정 종사자를 채용해야만 하는 지역아동센터의 입장에서는 이런 열악한 처지가 질 높은 종사자를 구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고, 종사자들의 힘든 근무 여건과 열악한 처우로 이직률이 높아 아이들을 안정감 있게 보호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되기에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앞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교사들의 일은 분명히 단순 방과 후 돌봄을 넘어서는 점이 있다. 학교의 돌봄 교실과 같은 일반 방과 후 돌봄은 가정이 자신의 기능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 대한 보호와 방과 후 시간 동안의 보충 교육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들에 대한 가정의 지도나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보충하고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일종의 대리 양육자나 양육 보완자로서 역할을 요구받고 있어 그 비중이 훨씬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학교 돌봄 교실의 보호 기능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와 일반 방과 후 돌봄의 차이점을 설명하다보니 피치 못하게 나온 비교일 뿐이다. 아무튼 학교의 돌봄 교사들의 처우에 훨씬 못 미치는 급여와 장시간 근무, 여기에 아이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의식까지 덧붙여지니 지역아동센터는 쉽사리 회피하고 싶은 곳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앞선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그런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가 아니라면 학교 방과 후에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전무하다. 고등학교 3학년의 장성한 아이가 할머니가 돌아가실까봐 겁이 나서 울 수 있는 때는 자기를 어려서부터 돌봐온 지역아동센터 교사 앞이다. 할머니와 손자 형제 둘 만이 살고 있는 그 집은 두 아이가 모두 지적 장애 판정을 받았고, 노환으로 여기저기 몸이 편치 않은 할머니는 두 아이들이 사람 노릇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어떻게든 악착같이 하루라도 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 한 가지만을 가지고 살아가신다. 그런 할머니의 소망과 의지를 잘 알지만 할머니가 여기저기 편찮으시면 다 큰 어른이나 진배없는 이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그런 아이에게 그래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곁을 한결같이 10년 동안 지켜온 지역아동센터의 존재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금껏 여기에 있어 온 것처럼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비록 부족한 모습이었으나마 늘 함께 하던 지역아동센터를 떠올리며 그 약속에 다시 한 번 기대어 보는 것이다.



우리를 멍들고 좌절시키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부당함과 불합리함’이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는 여기저기 멍투성이다. 예를 들어 올해부터 지역아동센터에서는 30명의 아동들을 돌본다고 하더라도 예전처럼 조건 없이 465만원의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운영비를 받기 직전 3개월 간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했던 아동들의 평균수가 33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19인 시설은 15명 이상이 되어야 하고, 29인 시설은 24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한 명이 부족할 때마다 15만2천원씩 운영비가 고스란히 삭감된 채 지급된다.

하지만 본래 가난한 지역에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돌봄을 제공해왔던 지역아동센터에게는 이런 조건이 너무 불합리하게 다가오는 점이 있다. 물론 구체적 상황을 모르고 예산 집행의 효율성 등을 내세운 탁상공론식 행정관의 눈으로 보자면 매우 합리적인 처사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듯이 많은 지역아동센터들이 빈곤 지역에 위치해 있고, 이들 지역은 갑작스런 재개발로 아이들 집이 이사를 가야 하거나 혹은 값싼 주거지역을 찾아 보호자들이 여기저기를 떠도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학교처럼 아이들을 일괄적으로 모아서 방과 후 돌봄을 실시할 수 없는 지역아동센터들은 자연히 아이들의 들고남에 부침이 있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린다. 더욱이 어떤 경우에는 정말 꼭 지역아동센터에 와서 돌봄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은 이미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에 길들여져 오히려 어른들의 돌봄을 거추장스러운 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행정이 이런 식으로 너무 안정적으로 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만을 염두에 두고 마련될 경우 지역아동센터들이 더 어렵고 힘든 아이들을 찾아내고 돌보려고 하는 노력들을 위축시킬 염려마저 들게 한다.

지역아동센터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기준 인원으로 정해진 33명이 넘든, 넘지 못하든 간에 아이들을 위해 종사자가 3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냉난방에 드는 비용이나 공과금 및 시설에 대한 비용 등의 일체 역시 변함없이 필요한 비용이다. 아이들의 수에 따라 비용의 달라지는 것은 결국 운영비의 20%에 해당하는 아동들에게 직접 사용하는 프로그램비만이며, 따라서 이런 논리대로라면 프로그램비를 아동 수에 따라 차감하는 방식이야말로 보건복지부의 논리에 따른 합리성을 갖는 방안이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제시하고 있는 2012년 지역아동센터 운영지침에 의해 기준 인원에 부족한 아동 수에 따른 전체 운영비를 일정 비율로 삭감하는 방식은 오히려 센터를 이용하는 아동들에게 어찌 보면 불합리한 피해를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또한 이 방식은 마치 지역아동센터가 아동 모집을 게을리 한 것에 대한 범칙금처럼 느껴지는데, 보건복지부는 한 번도 국민들에게 지역아동센터가 어떤 시설이고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점을 생각하면 보건복지부가 먼저 이에 대한 자기 책임을 다한 연후에 지역아동센터에도 책임을 묻는 것이 옳다.

덧붙여 이렇게 깎아내리는 것은 칼 같이 하면서 중간에 지역아동센터 이용아동 수가 많아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예산의 지원이 없어 운영비의 증액은 불가능하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역아동센터가 울화통을 터뜨리고 정말 센터를 그만두고 싶다고 느끼는 지점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지역아동센터는 부족함이 아닌 이런 불합리와 부당함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금 졸업한 아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형제만 둘이 있는 집안의 첫째 아이다. 자신은 조음장애와 난독증이 있어 머리로는 멀쩡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 아이의 말투는 어눌하기 그지없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글을 읽기가 어려워 수년째 소아정신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아직도 읽고 쓰기는 원활하지 못해 겉으로는 영락없는 바보처럼 보인다. 그의 동생은 그보다는 읽고 쓰기가 낫지만 오히려 자폐성향은 심해 남들과 관계 맺기가 형보다 어렵다.

그러나 두 아이는 모두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한 품성을 타고 났다. 보통 자폐 성향을 지닌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강박적 경향을 이들도 지니고 있는데, 쉽게 말해 지켜야 한다고 일러준 것을 지키려고 하는 타고난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 학교를 다녀오면 손을 씻고 숙제와 자기 공부를 하고 병원을 빠짐없이 다닌다. 자기 물건 정리가 완벽하진 않지만 또래 아이들 중에서는 돋보이게 가지런히 물건들을 정리하곤 한다. 성적이 오르진 않지만 시험 때마다 꼬박꼬박 준비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지식은 마음껏 늘지 않는다.

그런 아이가 한 번씩 폭력적이 된다. 아무리 그런 품성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거듭된 조롱과 비웃음, 멸시와 무시만은 받아넘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그린 고개 밑으로 그 아이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선택할 수만 있는 일이었다면 이 아이도 지금 이 시간,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태어나는 일이 그들의 능력이 아니듯이, 그가 그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 역시 그의 열등한 능력이 아닌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는 분명히 아무 문제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천성을 곱게 타고났다 할지라도 아이의 마음속에 이는 불합리함과 부당함은 가끔 그의 전 존재를 불안하게 만드는 심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을 돌보는 일이 왜 이렇게 불합리하고 부당하며 어려운 일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리 물질적 부족함은 지혜와 인내로 메울 수 있지만 이런 불합리함과 부당함은 상대를 미워하게 만들고 나아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게 만듦으로써 모든 것을 파괴하는 마성을 지녔기에 더욱 두려울 뿐이다. 차라리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물질적 부족함을 견뎌보라고 요구해준다면 감사할 것 같다. 진심어린 격려가 있다면 우리는 내일에 희망을 걸고 오늘의 어려움은 얼마든지 견뎌내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처럼 우리 정부와 사회도 이런 기특함을 좀 발휘해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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