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교장의 노무현 이야기 2012.10.25
세속적인 질문이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두 말할 것이 없다. 대통령이다.
청와대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누구일가? 물론 대통령이다. 여기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이런 세속적인 잣대가 없었다. 청와대의 권력은 대통령 취임 초기에 가장 강력하다. 바로 그 때였다. 대통령보다 높은 사람이 청와대에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그리고 그 분을 찾아 인사 드렸다. 그 분은 바로 청와대 근무경력 30년의 ‘목수 아저씨’였다.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낸 이은희 실장의 회고다.
“청와대 들어가서 한 달이 채 안 됐을 무렵이다. 출근길에 소나기가 내렸는데 누군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 분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에 근무해 온 목수 아저씨였다. 청와대 생활만 햇수로 30년.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영욕을 지켜 봐온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나는 영부인께 목수 아저씨 이야기를 했다. 며칠 후 대통령이 그 분을 만났다. ‘청와대에서 제일 높은 분이 계신 줄 모르고 인사가 늦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30년 근속의 목수아저씨가 청와대에서 가장 높은 분이었다. 목수 아저씨가 청와대에서 가장 높다면, 대통령은?
노무현은 어떤 사람도 낮춰 보지 않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다. 판사 시절에도, 변호사 시절에도, 국회의원 시절에도, 장관 시절에도, 한결 같았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낮은 사람이었다.
퇴임 후 봉하 시절에는 노무현의 인간적 면모가 여실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현직에 있을 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더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말 한마디 나누고 싶어서, 아니면 대통령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봉하를 찾은 시골 어르신들을 깍듯이 대접했다. 산에서 장군차 나무를 심다 말고, 산 아래까지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잡고 반갑게 맞아주면서 술과 안주를 권하는가 하면, 때로는 땅바닥에 신문지를 깐 술상에서 무릎을 꿇고 막걸리를 따라 주기도 했다.
호기심 많은 여학생들과도 잘 어울렸다. 나이 어린 학생들과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두 다리를 Y자로 구부려 키를 맞춰 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까르르 웃는다. 그런 장면이 소개되면서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했다.
청와대는 일반 국민들에게 참 부담스러운 곳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민이 함부로 만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 위해 어렵게 방문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분위기가 대체로 딱딱하다. 민주화되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하다. 대통령 의전과 경호가 그렇게 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게 늘 신경 쓰였다. 대통령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초대 의전비서관을 지냈던 서갑원 전 국회의원의 증언이다.
“언젠가 <백악실>에 오신 대통령께서 의자에 앉으시더니 ‘왜 이리 내 의자는 높게 해 놓았느냐’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께서는 참모들이 일부러 대통령의 의자만 조금 높여 놓은 것으로 생각하고, 의자 높이를 다른 의자와 맞춰 낮추라고 했어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대통령은 또 ‘손님들과 같아야지 내 것만 높아서야 되겠느냐, 그러지 말라’고 지적하기도 하셨더군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여성 임직원 9명과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올해 4월의 일이다. 이 회장이 누구인가. 한국 최고 재벌의 총수이자 한국 재계의 최고 권력자다. 세계적인 수퍼갑부 가운데 한 명이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에서 종신 대통령인 황제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날의 ‘황제 오찬’을 미담기사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룹 회장이 임직원들과 점심을 먹는 게 뉴스가 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직원들과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업무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도 뉴스가 될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청와대는 달랐다.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뉴스라면 뉴스일 것이다.
노 대통령은 주요 현안이 있을 때면, 비서실장 정책실장 등 장관급 참모는 물론이고 하위 직급인 행정관들까지 불러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하곤 했다. 일을 하는데 있어 직급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
김상철 행정관(홍보수석실)의 말이다.
“일개 행정관이 올린 보고서도 챙겨보며 ‘정 이해가 안 가거나 어려운 대목이 있으면 직접 물어보라’고, ‘인터뷰 요청을 하라’고 메모를 붙여 회신하는 대통령이었다. 그게 꾸중이었건 질책이었건 괜히 뿌듯해서 속없이 새어나오는 웃음을 한동안 감추고 다녔었다. 그런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는 게, 그런 그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는 게 문득, 꿈 같다. 여전히 슬픈 꿈 같다.”***
<태생이 아름다운 당신>
당신은 위대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자신을 낮추려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태생이 그랬습니다.
앉아 있으며 옆집 아저씨 같고
서 있으면 동네 이장 같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공장노동자였습니다.
열에서 한둘이 당신을 만만하게 본 건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기죽을 당신도 아니었습니다.
비록 당신의 입은 좀 거칠었지만
그 사심 없는 당당함은 누구도
흉낼 수 없는,
당신은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시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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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안희정 외, 우공이산, 223쪽
**월간중앙 2004년 1월초, 서갑원의 육성증언. <백악실>은 대통령이 오찬이나 만찬을 겸하여 외부인사를 접견하 는 청와대 본관의 대통령 집무실 가운데 하나다.
*** ‘야만의 언론-노무현의 선택’, 김성재 김상철 저, 책보세, 21쪽
**** 노무현대통령 추모시집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화남,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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