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8
이중흥 / 4․3유족회 제주시지부 회장
4월이 되면 노무현 대통령님이 생각난다.
지난 2003년 10월 30일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제주 라마다호텔에서 제주도민과 4․3 유족 등 천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과도한 진압과정에서 학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제주 4․3이 일어난 지 꼭 55년 만에 국가원수가 유족들과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그동안 연좌제로 공직에 진출할 수도 없었고, ‘빨갱이’란 말로 매도당하며 숨죽이며 살아왔던 제주도민과 유족들은 그때서야 응어리진 한을 풀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이 사과하는 자리에서 조천 제주시 유족회장은 “만세”를 외쳤다.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후 2008년 2월 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 김해로 돌아간 후 우리 4․3 유족회 제주시지부는 임원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아갔다. 퇴임 후 노 대통령이 사저로 초청한 외부 인사로는 우리 4․3 유족이 처음이었다고 들었다.
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뤄놓은 일에 저는 과일만 따먹었습니다”란 말씀을 했다. 이런 겸손함에 우리 유족들은 “정말이지 이런 분도 계시구나”라고 되뇌였다.
대략 1시간 정도 여러 얘기를 나누고 봉하마을을 떠나려고 할 때 양영호 고문이 “정원에 우리 제주 수종인 나무 한그루를 심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하자, 노 대통령은 “저도 좋습니다”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해 가을 우리 유족들은 제주 수종인 ‘산딸나무’를 봉하마을로 가져가 정원에서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와 함께 정원에 기념식수를 했다.
유족들은 “산딸나무는 4~5월에 하얀 꽃이 피고, 가을에는 빨간 열매를 맺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하얀 꽃은 우리 제주도민의 순수한 마음이고, 빨간 열매는 4․3 유족들의 한이라는 것을 알고 잘 가꿔 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노 대통령도 “예 잘 가꾸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내년 꽃이 필 무렵에 꼭 다시 찾아오십시요”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이게 우리 4․3 유족들과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검찰이 조작하며 집요하게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부엉이바위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했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 유족들은 분하고 야속한 마음에 한걸음으로 봉하마을에 도착해 눈물과 통곡으로 헌화․분향했다.
'하얀 꽃이 피게 되면 다시 꼭 방문해 달라고 했는데…'. 산딸나무는 하얀 꽃을 피웠지만 대통령님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소탈하고, 누구보다 제주도를 아끼고 사랑했던 노 대통령님을 생각하니 원통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10년 우리 유족들은 다시 봉하마을 찾았다. 노 대통령의 묘역을 방문하고, 대통령님이 거닐었던 봉하산과 절을 찾았다.
또 황망하게 노 대통령을 잃으신 권양숙 여사도 만났다. 권 여사는 “대통령께선 그때 4․3 유족들에게 ‘여러분의 정성을 잊지 않도록 가장 잘 보이는 사저 정원 한 가운데 심었습니다. 잘 키우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내년 초여름 꽃이 피면 그 때 한 번 더 오시지요’라고 화답했는데 그 한마디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권 여사는 “지난해에도 산딸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웠지만 그 분을 떠나보내느라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올해는 참 예쁘게 꽃이 피더군요. 4․3 유족들께서 이리 잊지 않고 자주 찾아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자 국가공권력에 의한 참극이었던 제주 4․3의 역사적 굴레를 걷어준 노 대통령님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까.
이제 다시 4월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제주 4․3. 4월이 오면 항상 노무현 대통령님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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