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개비 자전거 행렬, 봉하 들녘을 내달리다 - 봉하 구석구석 누빈 3회 봉하캠프…“아이에게 가치를 심어주고 싶어요”
봉하마을은 봉화산을 둘러싼 치맛자락이다. 봉화산 부엉이바위를 중심으로 오른쪽 자락에 옹기종기 모인 마을 군락이 있고, 그 안에 노무현 대통령 생가 및 사저가 있다. 그 왼쪽 자락으론 노 대통령 묘역, 생태연못과 둠벙, 편백나무숲, 화포천이 펼쳐진다.
대통령 묘역만 참배하고 돌아간다면 봉하마을은 보통 시골마을보다도 작게 느껴진다. 그러나 봉화산이 펼쳐 놓은 자락을 구석구석 찾아보면 산과 숲, 들판, 습지가 공존하는 보기 드문 ‘생태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2월 11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세 번째 봉하캠프는 마을의 구석구석을 찾아 이전보다 더 대통령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시도한 자전거 타기가 큰 도움이 됐다. 참가자들은 다음날 아침 자전거를 타고 봉하 들녘의 바람이 되어 내달렸다.
‘대통령의 길’에서 서로를 품다
이번 캠프에서는 남편의 손을 이끌고 봉하를 찾은 아내들이 많았다. 대화마당 중 듬직한 남편 옆에 앉아 첫 마디에 울음을 터뜨려 인사조차 하지 못했던 박애자님, 멀리 강원도 인제에서 남편을 졸라 두 자매와 함께 왔다는 김수희님, ‘명싫모’(MB를 싫어하는 모임)지만 ‘노사모’는 아니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친구 손을 잡고 온 이수진님, 거제에서 생활 속 안티조선운동을 실천하고 있다는 심영숙님도 남편을 설득해 함께 왔다.
반면 권혁기님은 결혼기념일을 보람 있게 보내겠다며 익산에서 부인과 함께 늦둥이 아들을 안고 왔다. 신혼으로 보일 만큼 다정하고 활기가 넘친 김성태·강영주 부부는 63년 동갑에 아들이 군대를 갔다고 밝혀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홀로 온 이들도 절로 동성 짝이 생겼다. 서울 처자 이지연님과 공순희님은 금세 친해졌고 성주에서 온 정인수님과 청주에서 온 김천구님도 바로 마음을 텄다.
‘대통령의 길’을 걸으면서 예술계 대학에 재직 중인 강영주 교수는 ‘사람사는 세상’ 합창단을 만들어보자는 뜻밖의 제안을 내놨다. 노을이 질 무렵 두런두런 ‘대통령의 길’을 따라 내려오는 이들의 모습은 숙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부채살처럼 펼쳐진 봉화산 자락처럼 넉넉하게 서로를 품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막걸리가 아니라 말이 고팠다”
마을식당에서 국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만들기가 준비된 숙소에, 어른들은 봉하마을 친환경쌀 방앗간 2층에 모였다. 어른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은 대화마당. 인사할 때부터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외모와 말투가 꼭 강기갑 의원을 빼닮은 경북 성주에서 온 정인수님이 조근조근 시국에 대해 속내에 있던 말을 꺼내자 권혁기님과 강대삼님이 그동안 억눌려왔던 울분을 털어놓았다.
남정네들이 봉하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한바탕 시국 성토회를 갖는 동안 여인네들은 봉하를 찾은 이유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대구에서 온 산호네 엄마는 “딸 산호의 꿈은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산호가 어릴 때부터 노 대통령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더니 요즘 부쩍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노 대통령님 가치를 따라간다면 적극 도와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두 자매를 데리고 온 장선미님도 “저도 대통령님을 참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대통령님과 관련된 추억과 가치를 심어주고 싶다“고 멀리까지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임아란님도 ”우리 성안이가 커서 지금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노 대통령님 가치를 계속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인제에서 온 김수희님은 6시간 넘게 운전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다시 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더욱 소중한 시간”이라며, “가족이 모두 와서 더 의미가 있다”고 기뻐했다.
그렇게 트인 말문은 두 시간을 이어갔다. 대화마당에 할애된 시간이 끝나갈 무렵 봉하재단 김경수 사무국장이 “그동안 막걸리가 고팠던 게 아니라 말이 고팠던 것 같다”고 하자 폭소가 터졌다.
첫 마디에 울음이 터져 말을 잇지 못했던 박애자님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까 소개하는데 울컥했네요. 그동안 답답했는데 저처럼 노무현 대통령님을 사랑하는 분들을 만나서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어요.”
“곳곳에 그 분의 손길이 닿아 있네요”
둘째 날, 자전거 타기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무척 신나했다. 봉하캠프 실무자들의 손품과 발품이 가장 많이 들어간 프로그램이다. 부산에서 40여대의 자전거를 빌려 트럭에 싣고 와서 캠프가 끝나면 돌려줘야 하니까 들어가는 품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자전거 타기 그 자체의 매력과 화포천까지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은 그런 고단함을 뛰어넘게 했다.
노랑개비를 매단 40여대 자전거가 일렬로 봉하 들녘을 가로질러 달렸다. 대통령님이 자전거를 즐겨 타셨던 그 길에서 노랑개비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화포천에서 페달을 멈춘 이들은 준비한 유자차를 나눠 마시며 망원경으로 철새들을 관찰했다. 아이들은 새 한 마리, 한 마리가 신기한 듯 관심을 보였고, 어른들은 화포천에 더 흥미를 가진 듯 보였다.
화포천은 김해 일대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낙동강으로 빠지면서 생긴 자연습지다. 과거엔 농업용수로 쓰이기도 했지만 홍수 때 잦은 범람으로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습지의 소중함을 모르던 시절에는 철로공사와 주변 공장 신축 등으로 마구 훼손되었다.
대통령님이 귀향하신 뒤 자원봉사자들과 매진한 일이 화포천 청소였다. 당시 나온 쓰레기 양만 50톤이 넘었다. 그 전에는 철새를 보기 힘들었으나 차츰 철새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런 설명에 화포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참가자가 말을 잇는다. “곳곳에 그 분의 손길이 닿아 있네요.”
점심을 먹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석별의 인사를 나눴다. 김천구님이 “다음에는 카풀 게시판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올 때는 각자였지만 떠날 때는 서로 목적지를 확인하며 어떤 이는 선뜻 차의 빈자리를 내어주면서 같이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