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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5월23일 그날> 끝내 비워지지 않을 술 한잔을 바치며

4주기 헌정추모글 2013.06.20

‘5월 23일 그날 하루’ 이야기, 어느덧 열 번째입니다. ‘절밥’님의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그날 전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절밥’님의 글은 슬프지만 마냥 슬프지 않고, 아프지만 마냥 아프지만은 않습니다. 담담하지만 사연만큼이나 단단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이 글의 마지막처럼 함께 안부를 건네고 싶어집니다. “잘 계시죠?”

20094월의 어느 날, 아내와 네 살 난 딸을 데리고 봉하에 들렀지만 당시 분위기 탓에 대통령님 얼굴은 뵙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쉬웠지요.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진입을 위해 톨게이트 앞쪽에 경찰이 보이더군요. 순간 안전벨트를 매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경찰은 미소를 짓고 있더군요. 걸렸습니다. 안전벨트 미착용! 경찰은 운전면허증 제시를 요구했고 응했습니다. 딱지를 끊고 면허증을 돌려주던 경찰이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더니, 면허증 갱신기간이 지났으니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라더군요. 벌금이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얄밉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아이참, 노짱 얼굴도 못 봤는데, 딱지까지.’ 그렇게 봉하와 헤어졌습니다.

찾고 또 찾았던 두 글자, ‘오보’ 

며칠 뒤,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총동문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주최 기수인 우리 동기들은 아침부터 행사준비에 정신이 없었지요. 운동장 정리와 천막 설치, 선후배들을 마중하는 일, 일정을 챙기는 일 등, 뒤에서 행사의 순조로움을 위해 발로 뛰어야 하는 분주함의 연속이었지요. 준비가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서 휴식을 위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핸드폰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습관대로 포털사이트를 보았지요. ‘[속보]노무현 대통령 오늘 새벽 서거.’ ‘뭐지 이건?’ 한참동안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달려갈 것도 아니면서 앉았던 몸이 벌떡 일으켜 세워지더군요. 다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앉은 채로 연신 핸드폰을 통해 관련 속보들을 보았습니다. 제목만 보았지요. 제가 찾았던 제목은 ‘오보’였습니다. 끝내 찾지 못했지요. 불안했습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친구들과 운동장이 흐려지기 시작하더군요. 핸드폰에 뚝 떨어진 눈물 한 방울. 그 위로 투영된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글자. ‘당신이 죽인 거야….’ 목장갑을 그 자리에 둔 채 친구에게 이곳에 못 있겠다고 하고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는 내내 주머니 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했습니다. 핸드폰을 보기가 겁이 났지요. 배경화면에 웃고 있을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TV를 켰습니다. 아나운서와 기자 목소리가 잡음처럼 흘러나왔습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지요.

당신의 국민으로 살았음이 자랑스럽습니다

“저기, 가게 안 열거야?” 방문을 열고 나온 아내가 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가야지…. 친구들 오늘 예약했는데, 가야지….” 작은 호프집을 운영하던 터라 동창들이 저녁 술자리로 저의 가게에 예약을 했거든요. 멍한 시간이 흘러갔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몸을 일으켜 집을 나왔습니다. 차를 몰고 가게로 가던 중 제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펑! 뻑! 펑! 뻑!” 공중에서 번쩍이는 형광 불빛과 소음. 분명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불빛이었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예의가 아니다 싶었습니다. “이럴 순 없다.” 행사장으로 달려가 회장인 친구에게 자제를 요청하기 위해 차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전하진 못했습니다. 이미 음악 소리와 조명이 가득한 축제 분위기의 운동장에서 제 개인적인 의견이 통할 리 없었지요.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해 먼저 가게를 열라고 했습니다. 강 둔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여전히 웃고만 있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 서러웠습니다. 현수막을 하시는 아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형님, 우리 가게 외부에 현수막을 걸 건데요. 이대로 적어주세요. 한동안 당신의 국민으로 살았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겠습니다.”

비워지지 않은 술잔

늦은 저녁, 친구들은 가게를 찾아왔고 오랜만에 시골 고향을 찾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일부러 술을 먹지 않았습니다. 술기운을 빌어 흔들리기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생을 퇴근시키고 새벽 4시경 가게문을 잠궜습니다. 잔 두 개를 꺼냈지요. 술잔 하나는 계속해서 비워지는데 나머지 하나는 비워지지 않더군요. “속 많이 상하셨을 텐데, 드세요. 죄송한데 제 가게에는 막걸리를 팔지 않아요.” 끝내 비워지지 않은 술잔을 남겨두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는 길에 노래를 흘렸습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집 앞에 도착해 근처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좀 보자고 했습니다. 친구를 보자 그때부터 눈물이 나더군요. 고함을 질렀습니다. 한참을 친구에게 기대어 울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죄송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분했습니다. 소리가 너무 컸나 봅니다. 잠을 자던 아내가 그 소리에 깨었답니다. 급하게 저를 데리러 왔더군요. 동네 사람 다 깨겠다며 저를 끌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그날을 보냈지요.

다음날, 현수막을 주문했던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거 달면 보수적인 이 동네에서 장사하기 힘들지 않겠냐?” 그냥 달아 달라고 했습니다.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현수막을 보고 들어온 한 분이 그러더군요. “노무현이 제사를 와 니가 지내노? 저거 떼라!” 또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지나가다 현수막 보고 생맥주 한잔하고 싶어 왔다. 주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제사를 지낸 것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저같은 장삼이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노짱 덕에 얻은 별명

세상이 다시 조용해지기 시작할 무렵,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봉하를 찾았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돌아 나오던 중 아내의 눈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맞잡은 손 놓지 않으면 ‘사람 사는 세상’ 반드시 온다.” 딸아이에게도 말했습니다. “솔아,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꼭 기억해라. 엄마 아빠가 솔이 다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4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가게를 하지 않고 도시로 나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책상 앞엔 밀짚모자를 눌러쓴 노짱님도 같이 있습니다. 덕분에 제 별명은 ‘좌파’랍니다. 잊지 못함이 병일까요?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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