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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5월23일 그날> 끝이었고, 시작이었다

4주기 헌정추모글 2013.07.02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에 관한 한 특권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80년 이전에 출생한 시민들인데요, 이들은 80년대 민주주의 발화를 기점으로 시작된 정치초년병 노무현의 활약을 동시대에 목격했습니다. 열한 번째 사연을 주신 ‘이름어려워’ 님은 그 시절 대학가의 매캐한 최루탄 냄새에 눈물콧물 흘리던 중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여느 정치인과 다르게, 재벌총수를 카랑카랑한 논리로 몰아붙이던 정치인 노무현을 보았습니다.
이때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이름어려워’ 님은 이후 한결같이 그에게 애정과 존경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비보를 들었을 때 바보 노무현을 처음 만난 ‘그때’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88년 5공 청문회부터 2009년 ‘그날’까지. 글쓴이의 기억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바보 노무현의 길을 함께 따라가 보시죠.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8시 좀 넘은 시각, 미적거리며 일어나 소파에 드러누워 습관처럼 TV를 켰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라고 아들 녀석은 늦잠 중이고 부산에 출장을 간 신랑은 오기 전이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어 느긋했습니다. 딱히 볼 것 없는 프로들을 이리저리 훑던 중 화면 아래에 뉴스 속보가 뜨더군요. 어리석게도 처음엔 노 전 대통령을 ‘노태우’인 줄 알았습니다. 병이 깊다는 소문도 들었고 나이도 그렇고…. ‘설마.’ 한 순간 깨닫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맞닥뜨린 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지고 손이 떨리고…. 벌떡 고쳐 앉아 화면을 응시하며 뉴스채널로 돌렸습니다. 화면 속에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귀로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머리로는 해석이 안 되는 이상한 상황. 부산에 출장을 간 신랑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알아, 지금 공항에서 뉴스 보고 있어.”
더 이상 어떤 대화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화면에선 속보가 이어지고 기자와 앵커는 연신 앵무새같이 사고소식을 시간 순으로 말해주는데 나는 두 손을 움켜쥐고 그저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화면만 노려봤습니다.

바보 노무현과 첫만남

대학교가 밀집해있는 지역에서 자란 탓에 이웃한 대학교에서 데모가 있는 날이면 날아오던 매캐한 냄새에 눈물 콧물 흘리며 수업을 중단하고 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다음날 등교할 때까지 그 매운 냄새는 거리를 뒤덮고 있었죠. 길가에 흩어져있는 깨진 블록 조각들, 유리병 파편들…. 사시사철 두껍게 누벼진 옷을 껴입고 거리에 줄지어 있던 전경들의 모습도 뒤숭숭한 분위기에 한몫했고요. 사과탄이니 지랄탄이니 닭장차들의 행렬이 익숙한 시절이었죠. 그렇게 중3에 역사적인 6.10항쟁을 지켜보고 6.29선언이란 걸 주워듣게 됐죠.

얼마 후에 청문회란 걸 하더군요. 높으신 분들이 줄줄이 나와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곤 했죠. 뭐, 답변 이래봤자 ‘기억이 안 난다, 모르겠다’는 말들뿐이었지만요. 그때 그래도 얼굴을 아는 이는 고 정주영 회장뿐이었는데 대기업 총수라는 분이 나오니 국회의원들도 “회장님, 회장님”하며  깍듯하데요. 질문을 하는 건지 변호를 하는 건지 어린 제가 봐도 답답한 노릇이더라고요. 그때 다른 의원들하고는 인상부터 다른 - 기름기가 없다고 할까요? -  카랑카랑하게 강단 있어 보이는 한 의원이 또박또박 질문을 하며 몰아세우는데 어휴~ 속이 시원하고 논리도 딱 부러지고! 그때 기억을 하게 됐죠,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그후 언론을 통해 마주칠 때마다 강렬한 첫인상 덕인지 정치인인데도 거짓말할 거 같지 않고, 정말 서민을 위해 애쓰는 사람 같고, 하는 행동도 투박하고 다소 거칠지만 진정성은 의심되지 않는, 그래서 믿음이 가고 잘됐으면 싶어서 마음이나마 격려를 보내게 됐습니다. 노사모 회원이 아니지만 대선 전에 인터넷사이트에서 자발적 지지운동도 하게 되고 거리유세도 찾아가고 당선됐을 땐 또 어찌나 기쁘고 뿌듯하던지. 이라크 파병 반대시위에 나가면서도 그분의 자리는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자리니까 본심과는 다른 행동도 정치적으로 해야 하리라 이해했고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탄핵을 당했을 때는 어린 아들을 싸매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놓쳐버린…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세력들의 반발이 그분을 흔들어대는 게 안타깝고 화가 나고 답답했습니다. 때론 진보진영의 타박에 안타깝고 조급한 요구들에 안쓰럽기도 했고요. 헌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던가요. 여기저기서 비난의 화살이 날아다니니 슬슬 지쳐가더군요. 슬며시 ‘좀 조심 좀 하시지 왜 매번…’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더군요. 진정성은 의심치 않지만 정치능력은 부족한 게 아닌가 의구심도 갖게 되고요. 자신 있게 비판자들에게 변호도 못하게 되고 지지자임을 밝히기도 주저하게 되고. 그저 속으로만 웅크리고 혼잣말처럼 변명하는 그런 지지자가 돼버린 거죠.

퇴임하시고 봉하에 가신 후 몰려드는 사람들과 조우하시는 모습이 언론에 비춰질 때마다 이제야 그분의 가치를 알아주나 싶어 뿌듯하고 나도 한번 가볼까 싶으면서도 지금처럼 인기몰이 할 때 말고 좀 잦아들면 그때 ‘난 진심어린 지지자로 찾아봬야지’하고 미뤘습니다. 다음이란 기회가 항상 있을 줄 알았거든요. 형님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이 점점 번져가더니 검찰과 언론은 연일 여론을 호도하고 당시 정권의 정치적 목적이 빤히 보이는 상황임에도 진보진영은 법적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도덕적 흠결을 질책하기 바빠 그 놀음에 널뛰기를 했습니다.

결국 칩거에 들어가신 그때 신랑과 봉하에 갔습니다. 촬영카메라는 집을 빙빙 둘러 진을 치고 있고 동네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더군요. 대통령님께서 담배 한대 물고 계시던 그 가게 탁자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울었습니다. 그분께 전하지 못한 내 마음과 내 게으름과 이 모든 상황의 억울함에 눈물 흘렸습니다. 강직하고 자존심 높은 저분께선 이 상황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답답하실까 싶어 울었습니다. 이 광풍이 언제까지 저분을 휘두를지 모르겠지만 잘 버티시라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대통령님 나오세요!”하고 외치면 환한 동네아저씨 웃음을 지으며 털털한 말씀나누길 바랬습니다.

복원의 종착역 혹은 출발역, ‘그날’

그런데 5월 23일…. 그분께서 그토록 그답게 자신의 결백을 고백하고 주변의 모든 짐을 홀로 떠안고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려 날아 오르셨습니다. 구구한 변명도 없이 절절한 한탄도 없이 ‘노무현’이란 사내답게 훌쩍 떠났습니다. 가는 길에서마저 주변인에 대한 배려로 아무 목격자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갔습니다.

납골묘로 향하는 차 속에서 우리 부부는 통곡을 했습니다. 억울하고 서럽고 안타까운 맘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분을 비난하고 의심하던 이들 앞에서 그를 감싸지 못하고 부인한 스스로가 죄스러워 울었습니다. 친정어머니도 안타까워하시며 우시더군요. 그 많던 지지자들은 다 어디가고 비난 속에 저리 가게 두었냐고요. 왜 저는 그분을 지켜드리지 못했을까요. 그날 밤 신랑과 소주를 들이키며 부모 잃은 심정으로 울었습니다. 우리가 꿈꿨던 세상은  끝내 기득권의 힘에 눌려 무너지고 평범한 촌부로 고향을 가꾸며 살고자 한 이도 지켜주지 못하고 무엇보다 자전거 뒤에 매달려 손을 흔들던 손녀에게서 할아버지를 잃게 만들었다는 회한이 짓눌렀습니다. 대한문 분향소를 찾고 노제를 지내면서도 마음속에 매달린 돌덩이는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후로 결심을 했답니다. 이런 후회를 다시는 하지말자고요. 다음으로 미루다 가슴 치는 안타까운 기억은 이번으로 끝내자고요.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고요. 그래서 우리 아들 녀석에겐 그분의 말씀처럼 사람 사는 세상을 누릴 수 있게 하자고요. 깨어있는 시민으로 조직된 힘으로 이 사회를 바꾸자고요. 더디지만, 서툴지만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먼 훗날 그분을 다시 뵐 땐 조금은 당당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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