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2일, 서울고법이 동일여고에서 해고된 조연희 교사에게 던진 한 마디다. 담당 판사는 선고 예정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당사자도 변호사도 없는 자리에서 "기각한다"라는 단 한마디로 조 교사의 해고를 확인시켜 줬다.
조연희 교사는 지난 2006년 7월, 학교법인 동일학원의 동창회비·급식비 관련 비리를 밝혀내 해고됐다. '비리'를 고발한 교사의 손이 아닌, '비리'를 저지른 사립학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대한민국 사법부가 말하는 법의 정의고, 사법부가 바라는 교육의 정의인지 묻고 싶다.
도대체 서울고등법원은 무엇을 심리한 것인가?
조연희 교사의 복직을 바라며 학생들이 접은 수천 마리의 종이학과 복직을 원한다는 어린 학생들의 서명에 담긴 눈물을 고등법원 판사들이 보기는 한 것인가? 또 동창회 장학금 하나 없는 학교에 제대로 된 동창회를 만들어 달라며 선생님을 지지하던 수많은 졸업생들의 호소를 듣기는 한 것인가?
서울 금천구 주민들이 "학생 편이 되어주어 고맙다"면서 보낸, 조연희 교사 복직 요구 탄원서를 한 줄이라도 읽어보기는 했는가?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금천구에서 서울교육청까지 매일 50리 걷기를 통하여 이끌어낸, 서울교육청 특별감사에서 밝혀진 15억 비리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한 번이라도 쳐다보기는 한 것인가?
있지도 않은 유령 동창회를 만든 뒤 학생들에게서 회비를 걷어 횡령한 이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기는 한 것인가? '이사장과 학교장이 동일여고 교사들의 정당한 민원을 징계로 협박하고, 아무 이유 없이 담임도 배제하여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는 노동위원회의 결정문과 대법원 판결문의 존재를 알기는 하는 것인가?
해고 위협을 무릅쓰고 교육환경과 학생 학습권 보호를 위해 사학 비리를 고발한 공로로 제5회 투명사회상을 수상한 조연희 교사의 수상 선정 이유를 읽어보기는 한 것인가? 도대체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서 무엇을 조사하고, 무엇을 심리한 것인가? 무슨 근거로 명백한 공익 제보자인 조연희 교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우기는 것인가?
강의석 판결,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
지난 8일 사학재단의 일방적인 종교 수업과 예배 강요를 거부해 퇴학을 당했던 강의석 군의 2심 재판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사학재단의 손을 들어주어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는 당연히 종교 선택을 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서울고등법원의 강의석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서울 고등법원 판결이 정당하다면,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학생도 사학재단이 제멋대로 퇴학시킬 수 있다. 또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따라 헌법적 권리인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권을 지키기 위해 사학의 비리를 폭로한 교사도 사학재단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다.
지난해 입시문제 유출로 물의를 일으킨 김포외고를 교육청이 감사한 결과, 16억원의 회계비리가 있음은 물론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 이를 이유로 경기도교육청은 22일, 김포외고 재단에 교장과 교감을 파면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김포외고는 교장과 교감을 파면할 수는 없고 "이미 제출된 교장의 사표를 수리하겠다"는 의사를 비쳤고, 경기도교육청 또한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포외고에서 나타난 이 현상은 조연희 교사 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서울교육청은 동일여고에 대한 감사를 통해 회계비리 책임자들에게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이들에게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고 지금도 학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근무하고 있다. 심지어 대법원에서 동창회비 횡령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이사장도 아무렇지도 않게 근무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조연희 교사가 비리를 폭로하자, 동일학원측에 '보복징계로 보일 수 있으니, 교사 징계를 재고하고 신중을 가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조연희 교사를 비롯한 교사 3명은 한꺼번에 해고됐다.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학생을 '교육의 이름'으로 퇴학시키고, 비리를 고발한 교사를 보복 해고하는 사학재단은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 이제 사학재단에 의해 유린된 교육의 정의, 서울고법에 의해 유린당한 법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곳은 대법원밖에 안 남았다.
대법원이 최소한의 상식과 법의 정의에 입각하여 잘못된 사립학교관을 바로 잡고 대한민국 교육을 바로 세우는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 그것은 조연희 교사를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는 것에서 시작함을 대법원은 재판을 통해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5.22
* 사법부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