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1/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1/thumb/


샹그릴라1225
조회 1,060추천 12012.11.07

.jpg)


운현궁&궁궐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던 집
궁궐은 아니었으나 궁궐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던 집이다.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고종이 출생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26대 왕이 되는데 그때 나이가 12세였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다스리게 되니
이 집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만했다고 한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궁’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곳은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는데
담장의 둘레만도 수 리에 달했다고 하며,
고종이 머물던 창덕궁과의 왕래를 쉬이 하기 위해
운현궁과 이어지는 흥선대원군의 전용문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입구로 들어서면 이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머물던 수직사가 오른편에 있고
그곳을 지나면 노안당이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대원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껏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양반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해서 만들었다 하며,
처마를 이중으로 두르고 있는 보첨도 이 건물의 볼거리이다.
옆으로 이어지는 노락당은 운현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고종이 명성황후 민씨와 가례를 올린 곳이 바로 여기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이 있는데,
대원군의 부인인 민씨가 살림을 하던 곳이다.
밖에서 보면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듯 보이나
계단을 올라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가운데 중정이라는 ‘ㅁ’자형의 작은 마당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데
안채가 가지는 성격에 따른 폐쇄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이로당을 나서면 앞으로 작은 기념관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주장했던
쇄국정책을 알리는 척화비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등을 모형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펌)
![]() |
![]() |
![]() |
![]() |
|---|---|---|---|
| 1451 | 펌- 정말 아름다운 사진 (5) | 정병태 | 2008.06.18 |
| 1450 | 손모내기 논의 아기오리들. (6) | 혼자서도잘해요 | 2008.06.18 |
| 1449 | 2008년6월18일 비가 퍼붓는 봉하 (8) | 부산싸나이 | 2008.06.18 |
| 1448 |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펌) (2) | 막시무스 | 2008.06.18 |
| 1447 | 반드시 단죄 해야할 인간들.....(펌) (3) | 막시무스 | 2008.06.18 |
| 1446 | [행인3]님의 글을 관리자님은 읽어주세요 ^^ (4) | 그루터기.TWO | 2008.06.18 |
| 1445 | 노대통령 취임식장 [謹弔]삼가 명복????? (2) | chunria | 2008.06.17 |
| 1444 | chunria님의 글을 보면..... (6) | 은빛노루 | 2008.06.17 |
| 1443 | 미국 유학생이 본 대한민국, 이명박 (12) | 무내커 | 2008.06.17 |
| 1442 | 2008년6월17일 화요일의 봉하 (10) | 부산싸나이 | 2008.06.17 |
| 1441 | 2008년 6월 17일자 경향 신문 1면,2면,3면 하단 광고 | 리레 | 2008.06.17 |
| 1440 | 김정일 땜새 쉼쉬로 웃음시로... | chunria | 2008.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