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일 새벽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시위대들이 한 여성(가운데 뒷 모습)을 “프락치”라고 몰아붙이며 에워싸고 있다. 고진광(원 안)씨는 이 여성을 보호하려다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했다. /최순호 기자 ch****@chosun.com
그러자 시위 인파들은 "이 여자는 조선일보 프락치다. 가만 둬선 안 된다" "신분증 내놔라! 조선일보 프락치 아니면 왜 신분증을 안 보여주느냐"라고 말했다.
나는 "이러면 안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폭행하면 다 범죄자가 되는 거다"라고 설득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냥 꺼져라" "야 이X아,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꺼져"라면서 한 걸음씩 물러섰다.
여자는 "나는 외국인 손님과 약속이 있어서 코리아나 호텔에 온 사람이다. 호텔에서 나오다가 시위대가 유리창을 깨는 것을 보고 왜 촛불시위와 상관없는 호텔 유리창을 깨는지 물어봤을 뿐"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야 꺼져!" "보내줄 때 얼른 튀어 가라"며 윽박질렀다. 여자는 황급히 자신을 둘러싼 시위대를 피해 자리를 떴다.
상황이 정리됐다고 생각한 나는 인도 쪽으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잠시 후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100여명쯤 되는 시위대가 몰려 있었다. 아까 그 여자가 또다시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지가 뭐 잘났다고…. 맞아도 싸다" "너 조선일보 기자냐! 신분증 내놔라!"
코와 입을 수건으로 가리고 눈만 내놓고 모자를 쓴 건장한 남자 10여명이 여자를 둘러싸고 위협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듯하더니, 한 남자가 여자의 목을 팔뚝으로 감았다. 다른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았다. 또 다른 남자는 여자 뒤에서 여자의 다리를 발로 걷어찼다. 여자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X 잡아 죽여!" "미친X"…. 여자를 둘러싼 시위대는 더 크게 소리쳤다. 여자를 둘러싼 남자들 중 일부가 여자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렸다. 사색이 된 여자는 한 남자의 팔에 목이 감긴 채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일부 시위대가 전경들에게 폭력을 쓰려고만 해도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러다 이 여자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연약한 여자에게 이러면 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주위에서 내게 주먹이 날아왔다. 얼굴을 수건과 마스크 등으로 가린 청년들이 마구잡이로 등, 배, 가슴, 팔 등 온 몸을 때렸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10명은 "너부터 죽어"라며 내 얼굴을 꼬집고 할퀴기 시작했다.
"피다!" 고함소리와 함께 나를 때리던 시위대가 물러섰다. 내 얼굴에서 피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나를 아는 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왔다. 그들이 나를 부축해 청계광장 쪽에 있는 의료진에게 데려다 줬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도무지 내가 왜 맞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이 50이 넘도록 이렇게 맞아보기는 처음이다. 문득 '인민재판'을 받는 기분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30분 정도 지난 후 정신을 차려 코리아나 호텔 쪽으로 갔다. 호텔은 엉망이었다. 유리창이 깨진 상태였고, 시위대가 던진 쓰레기가 로비 안에까지 쌓여 있었다.
무고한 시민에게 마구잡이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대,
청와대 지키기에 급급해 시민의 안전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공권력.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며칠 후면 유학간 큰딸이 오랜만에 돌아온다. 내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