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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Boy
조회 1,171추천 112009.01.04
새해 해맞이를 호미곶에서 하려고 부산을 떨어 보았지만 사람과 차 구경만 실컷 하고 뒤늦게 구름사이로 뜨는 해를 차 안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고는 힘든 몸과 번잡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조용한 절에서 다시금 새해 마음가짐을 하기 위해 주말에 보경사에 다녀왔다.
포항시 북구 ***에 위치해 있는, 보경사는 포항에서 차로 30-40분 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아담하지만 조용하고 운치 있는 사찰로써 신라시대 때 창건되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중건되어 내려오는, 일천삼백 여년의 오랜 역사가 있는 사찰이었다.
웅장한 멋은 아니지만 듬직하게 둘러앉은 내연산은 겨울에도 풍성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어 보는 사람도 넉넉하게 하였다. 산행을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듯 솟았지만 지금은 여의치 않으므로 그저 절 구경만 하고 돌아가려는 참이다.
절 입구 왕복 일차선의 넓지 않은 도로에는 길 가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가 저마다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겨울이라 잎 하나 없음에도 오랜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는, 부드럽게 휘감은 듯 굵은 가로수 줄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겸손해 지게 하였다. 여름철이면 무성한 잎들로 시원하고 아름다운 녹음이 우거질 것을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길이아닐 수 없다.
절 입구 사천왕상은 금방이라도 악귀를 쫒아 낼 것만 같은 우락부락한 얼굴과 힘찬 자세로 지키고 있었는데 무서움과 함께 왠지 친근함도 있다. 바랜 색과 갈라지고 삭은 나무는 그 간의 시간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커다란 절구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대리석 가운데에서 솟아올라 가득 채운 감로수(甘露水)는 최근 보아 온 물 중 가장 깨끗하였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머금은 그 맛 또한 시원하다 못해 후련하였다.
앞마당의 5층 석탑은 군데군데 누렇게 바래어 있어 중후한 멋이 묻어나고 있었다. 대웅전(大雄殿)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중년의 아낙이 불상 앞에 꿇어 엎드려 참배하고 있었다. 죽은 이들을 극락으로 보내 고저 하는 속세인들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명부전(冥府殿)도 여느 사찰에서는 흔히 볼 수 없어 인성적이었다. 저 멀리 돌담 넘어 스님들이 안거(安居)하고 계실 절방도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아마, 새해를 맞아 정진수양을 하고 있으리라. 눈으로만 간직하고 가기엔 아쉬울 것 같아 기념촬영을 몇 장 하였다. 속세의 버릇을 절간에 와서도 버리지 못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세속인인가 보다. 범종각 앞의 커다란 감나무엔 떨어지지 않은 감들이 작고 까맣게 색이 변한 채 가지마다 달려 있어 흔히 볼 수 없는 겨울의 풍성함을 볼 수 있었다. 보경사 까치들도 더불어 넉넉하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이다. 한켠에는 스님들의 미술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는데 마음의 양식과 육체의 안녕을 위해 소품들을 구입해 볼 만 하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보경사를 나와 출출한 배를 채우려 동동주에 파전을 시켜 먹는데 예전 대학생 시절 산행을 하고는 내려오는 길에 먹던 그 맛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연산 산행을 하고 먹으면 한층 더 맛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함께 간 이가 보채어 더덕 구이도 맛 보았다. 언젠가 한번 먹어 본 기억이 있던가 ? 매운맛과 쓴맛, 단맛과 구수한 맛이 절묘하게 섞인 독특한 그 맛은 말로 형언 할 수가 없다. 공짜로 내 오는 취나물도 맛으로는 뒤지지 않았다. 3접시나 받아먹었으니 말이다.
절에서 구입한 명상의 말씀을 돌아오는 길에 들어 보았다. 육체의 때를 벗기 위해 매일 더운 물에 몸을 담근다지만 흘러나오는 향기로운 말씀들은 영혼의 온천욕이라 할만 하였다. 세초(歲初)의 보경사 나들이는 해맞이 보다 차분하고 시원하였으며 또한 향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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