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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보는 우공이산... 노공이산

화은note 조회 1,141추천 62008.12.05

우공이산(愚公移山)  - 盧公移山
《열자(列子)》 <탕문(湯問)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太形王屋二山, 方七百里, 高萬仞, 本在冀州之南, 河陽之北.
北山愚公者, 年且九十, 面山而居.
懲山北之塞, 出入之迂也, 聚室而謀, 曰
"吾與汝畢力平險, 指通豫南, 達于漢陰, 可乎?" 雜然相許.
其妻獻疑 曰 "以君之力, 曾不能損魁父之丘. 如太形王屋何? 且焉置土石?"
雜曰 "投諸渤海之尾, 隱土之北."
遂率子孫荷擔者三夫, 叩石墾壤, 箕畚運於渤海之尾.
隣人京城氏之孀妻有遺男, 始齔, 跳往助之.
寒暑易節, 始一反焉. 河曲智叟笑而止之, 曰
"甚矣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
北山愚公長息 曰 "汝心之固, 固不可徹, 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 有子存焉. 子又生孫, 孫又生子, 子又有子, 子又有孫
子子孫孫, 無窮匱也, 而山不加增, 何苦而不平?"
河曲智叟亡以應. 操蛇之神聞之, 懼其不已也, 告之於帝.
帝感其誠, 命夸蛾氏二子負二山, 一厝朔東, 一厝雍南.
自此, 冀之南, 漢之陰無隴斷焉

태형 왕옥 두 산은 사방이 7백리 높이가 만길로 본래 기주 남쪽, 하양 북쪽에 있었다.
북산의 우공은 나이가 곧 90인데 산을 맞대고 살고 있었다.
산 북쪽이 막혀 드나듦에 멀리 돌아가는 고생을 하니, 집안 사람들을 모아 도모하여 말하기를
"나와 너희들이 힘을 다해 험지를 평탄히 하여 예남을 열고 한수의 남쪽까지 이르려는데 괜찮겠는가?" 하니 분분히 서로 동의하였다
그 처가 의문을 내어 묻길 당신의 힘으론 괴부의 언덕조차 덜지 못할텐데 태형와 왕옥을 어찌한다는 것이며, 또 흙과 돌은 어디에 둘것입니까?
말하길 발해의 끄트머리 은토 북쪽에 던지면 됩니다, 하여
드디어 자식과 손자를 거느리고, 짊어지고 멘 세 남자가 돌을 두드리고 땅을 일궈 삼태기로 발해 끄트머리로 옮겼다.
이웃사람 경성씨의 미망인이 사내 아이가 있어 이갈이를 시작하는데 뛰어와서는 이를 도왔다.
여름과 겨울 계절이 바뀌고야 비로소 한번 되돌아오게 되었다. 하곡 지수가 웃으며 만류하여 왈
당신의 어리석음이 심히 깊도다! 얼마 남지 않은 일생과 여력으로 산의 터럭 하나조차 헐지 못할 것인데 흙과 돌을 어찌 하겠는가?
북산 우공이 장탄하여 말하길 당신 생각의 고루함이 굳어 가히 통하지가 않으니 과부의 어린애만도 못하오.
비록 내가 죽어도 자식이 있소. 자식이 또 손자를 낳고 그 손자가 또 자식을 낳으며, 그 자식은 또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은 또 손자가 있어 자자손손 끝이 없으나, 산은 불어나지 않으니 어찌 수고롭다 불평하리오?
하곡 지수가 대답할 말을 잃었다. 조사라는 신이 이를 듣고 그가 그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천제에게 고하였다.
천제가 그 정성에 감동하여 과아씨 두 아들에 명하여 두 산을 짊어지고 하나는 삭동에 하나는 옹남에 두게 하였다.

이로부터 기주의 남쪽 한수의 남쪽으로 높고 험준한 산등성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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