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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박정희와의 싸움을 새롭게 시작하며

책에봐라note 조회 1,731추천 142009.02.23

다시 박정희와의 싸움을 새롭게 시작하며

2008 서울 문래동 근린공원

 

아래에 옮겨 놓은 20일자 한겨레 기사를 보며 이제 우리 사회가 안타까움이나 분노를 넘어 아예 미쳐버린 사회라는 생각까지 든다. 아니면 오히려 내가 미쳐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일까.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과연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하지만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원래부터 함량 미달이고, 짝퉁 불량이었고,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유치하고 어설픈 것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처음 시작부터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박정희로부터 시작되어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권위주의’라는 더럽고 어두운 유산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타락한 정신문화를 주입한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다. 누군가는 이런 사소한 것까지 모두 박정희와 연결한다고 할 것이다. 결코 사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아래 기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미쳤고, 미치고 있는 박정희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박정희가 남긴 유산이나 흔적을 쫓고 있으며, 내 인생에서 사진으로 하는 가장 큰 주제가 <독재자 박정희 및 그로 인해 견고하게 뿌리박힌 권위주의의 청산>으로 이곳을 빌어 내가 ‘안티(反)박정희’ 또는 ‘박정희 청산론자’ 임을 커밍아웃 하고자 한다. 더불어 내 스스로에게 나에 대한 약속과 다짐을 새롭게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좀 거창하지만 게으른 나에게 채찍을 가하며 다시 싸움에 나서는 출정식의 의미라고나 할까.

 

솔직히 난 이명박 정부나 그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희망이나 작은 관심조차 거의 없다. 그러니 장관이나 참모가 누구시거나, 장관 후보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는 더 더욱 관심이 없다. 이명박은 내 이상형도 아니거니와 그 일당이 하는 짓마다 용서하기에는 너무 거시기 하다. 그래서 그런 관련 기사는 대충 보고 지나간다. 그래서 내각의 각 부처 이름조차 잘 모른다. ‘행안부’라는 것도 오늘에서야 확실하게 알았다. 조금 농을 붙인다면 그전까지는 ‘행안부’가 ‘공안부’의 조카쯤만 되는 줄로만 알았었다.ㅎㅎ

 

아래 기사의 이런 분이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그 대단한 서울대학교의 교수이자 학자이시며, 이 분이 한 나라의 안살림을 하는 행정안전부의 장관 후보자이며,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신단다. 이런 분들을 임명하는 분께서도 이런 일이 무지 재미있어서 즐기시는지 반복되고 계속된다. 그래서 그런 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제 식상하다. 심심하기도 하고. 밥맛을 잃게 하려는 듯 사람들로부터 의욕을 사라지게 하려는 무서운 음모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탕이나 진통제에 길들여지듯 이제는 모두가 이런 것들이 폭력이고, 강간이며, 테러인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당한다는 것을 즐기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나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고, 백치처럼 아예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 '그 밥에 그 나물'보다도 더 지겹다. 짜증을 넘어 죽일 수만 있다면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인민재판을 부정하고,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문명인이며, 휴머니스트인데도 말이다. 부디 용서하시라. 조금 유치하지만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매우 사치스러운 표현을 써봤다.

 

자신이 자신의 부정이나 범죄에 대해서 조금은 부끄럽기는 한데 송구스럽다든지 미안한 게 아니라 그저 조금 안타깝단다. 모순의 논리(잠시 열을 받다 보니까 ‘논리의 모순’이지 헷갈린다)가 너무 남발되고 자연스럽고 일반화되어 버린 것 같다. “모른다”, “기억에 없다”처럼 오히려 “배째라”며 달려드는 철면피와 함께 모순의 논리도 이제 그들의 필수조건인 듯도 싶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마이 무따 아이가~" 더 크게 해먹지 못해서 이렇게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부끄러운 게 세 가지 밖에 없어서 안타까운 건지, 부끄럽지도 않을 일을 부끄럽다고 말해야 해서 안타까운 건지, 다른 분들처럼 “모른다”, 기억에 없다“며 버텨야 했는데 자기의 생각보다 진도가 많이 나가서 안타까운 건지, 지금까지 꼭꼭 잘 감추며 지내왔는데 이렇게 중요한 때에 재수 없게 들켜버려서 안타까운 건지, 조금 쪽이 팔리니까 그냥 안타까운 건지, 어떻게 해서라도 이번만 잘 넘어가면 장관자리 차지 할 수 있으니까 송구스러워하면 안 되고 그저 안타깝다는 표현으로 때우려는 것인지...

 

이러면 이제는 동네 통장이나 반장보다도 못한 장관자리가 된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는데 나만 모르고 뒤쳐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럴 때 우리는 "미치고 환장한다"는 표현을 쓴다. 미친 데다 환장까지 한다. 할 말이 없다. 아니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조용히 잊어야 한다. 그나마 내 정신 건강을 조금이라도 지키기 위해는 다른 방법이 없다.

 

방귀 정도가 아니라 술 처먹고 몽땅 토 해놓으시고 거기에 똥을 퍼질러 싸놓으시고도 오히려 너무나 태연하고 너무나 뻔뻔하시다. 오히려 큰 소리를 치신다. "나만 그러냐?" 는 식이다. 그런데, 또는 그러면 그 말이 맞다. 이달곤인가 뭐시긴가 하는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오히려 이달곤 이 사람은 억울할 지도 모른다. '새 발의 피'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이루면 된다. 그렇게 된 지가 오래 되었다.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고, 나처럼 요란을 떨 일도 아니다. 이른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양아치들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오른 자리와 그렇게 얻은 명예가 무슨 명예로운 자리가 되겠는가. 그런데 우리 생각과는 분명 다르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명예라 생각하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비록 무릎을 꿇고 바닥을 혀로 핥더라도 말이다.

 

명예는 높은 곳에 있지 않다. 내 스스로가 명예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존경할 때 비로소 명예라는 것이 주어진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필수다. 실수나 잘못은 할 수도 있다. 늘 흔하게 하는 말로 '인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일 때 용서받거나 존경받는다. 우리 사회가 명예를 잘못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박정희로부터 시작되었고 권위주의에 다름 아니다.

 

17년 넘게 나는 나름대로 자긍심을 가지고 아주 열심히 정말 최선을 다해 유치원 선생을 했었다. 어린 아이들과 그 젊은 부모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마치 무슨 사명감을 가진 것처럼 "무엇이 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하며 살아왔었다. 다 거짓말이다. 내가 착하고 순진한 게 아니라 멍청한 축구바보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나를 아주 새빨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친일 및 쿠데타와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박정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우리 민족과 역사와 나아가 우리의 정신까지 왜곡하고 피폐하게 만들었다. 역사의 주인공인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사가 아니라 폭력이나 조작조차도 서슴치 않는 무자비한 탄압과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 배를 채우는 대신에 머리와 가슴을 비워야 했다. 정의와 양심을 배고픔을 채워줄 빵과 바꿔야만 했다. 오직 한 길 만이, 일방적인 선전과 논리로 우리를 짐승처럼 더러운 우리로 몰고 가두었다.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야 했었다. ‘침묵은 금’이라며 불만이나 비판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침묵만을 강요받았으며, ‘하면 된다’는 구호 아래 우리 모두는 그저 그의 종이었고, 부하였고, 기계였으며, 준비된 전사였고, 예비군이었을 따름이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도 아닌 뭔가 천민 냄새 가득한 변질된 이데올로기에서 들러리로 살아야했다. 오직 배고픔에서의 해방을 핑계로 모든 권리는 짓밟아버리고 의무만 강요당했다. 모든 절대적인 가치들을 부정하고 버려야 했던 것이다. 지금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그런 소리나 하고 있다며 무조건 박정희에 대한 흠모내지는 숭배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 것을 아직도 강요하는 듯하다. 오랜 시절 매우 잘 길들여진 것의 결과이고, 자신의 이익이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다.

 

박정희의 독재로부터 시작된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꼼짝 못하게 덮고 있다. 몸과 마음에 아픈 상처와 무서운 기억들을 깊이 새겼다. "하면 된다" 아니 "까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려선 안 된다. 일제 고사를 거부한 교사를 단 칼로 해임해 버리는 것에서 보듯이 이제 우리 사회는 정직하거나 정의롭거나 소신이 있으면 안 된다. 눈치 잘 보고, 대가리 잘 굴리고, "No"라고 해야 할 때 "No"라고 하거나, "Yes"라고 해야 할 때 "Yes"라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큰 일 난다. 그냥 "Yes"하라고 하면 "Yes"하고, "No"하라고 하면 "No"하면 된다. 오직 그것뿐이다. 아주 쉽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기를 치거나 강도짓을 해서라도 오직 안 걸리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단, 포장은 좋아야 한다. 타이밍도 좋아야 하고.

 

박정희는 아직 죽지 않았다. 갈라진 땅 남쪽에서 만큼은 그의 망령은 코로 숨 쉬는 모든 것들을 압도한다. 지금도 살인마 전두환은 박정희라는 큰 바위 뒤에 숨어서 하이에나처럼 능글능글 웃고 있고, 호랑이 굴로 호랑이 잡으러 떠난다던 김영삼은 박정희와 어깨동무 하고서는 자신은 좀 다른 척 똥 폼도 잡으며 양다리를 걸친 채 똥개처럼 앙칼지게 짖어 대고 있고, 이명박은 박정희라는 크고 든든한 주인 앞에서 그의 흉내를 내며 발정 난 도둑고양이처럼 온갖 꼴값을 다 떨며 울어대고 있다.

 

2008 서울 *** 근린공원

 

"그런 만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가수 김건모의 노랫말처럼 ‘잘못된 만남’의 시작은 이렇다. 서울 *** 근린공원에는 박정희의 흉상이 삼성에스원의 <SECOM>이라는 선진화(!)된 보안경비장치 및 이중 울타리로 된 그늘 속에서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다. 우리는 갇혔다고 말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지켜내고 있는 셈이다. 이곳이 '5.16군사혁명발상지'라며 내란 쿠데타 모의 장소를 박정희 흉상이 외롭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건 흉상이 아니라 그의 정신이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상징이라는 것이 살아있거나 존재하는 모든 것의 맨 위에 자리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고 독립군을 잡으러 다니던 일본 군인이었던 자가 영웅이고 애국자라면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논리대로 우리에게도 테러리스트가 된다. 적국 일제의 법논리도 억울한 데 우리가 지금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義士)와 테러리스트라는 극명한 모순이 우리의 아주 슬픈 자화상이랄까.

 

2008 서울 문래동 근린공원

 

 

국민적 저항인 촛불이 테러가 되고, 가난한 것이 죄여서 생존권을 외치다가 분명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죽어간 것이 틀림없는 데도 재개발지역의 세입자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버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아무 일 없듯이 너무나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국민을 위한 공권력이 아니라 대통령 한 명을 지키기 위한 공권력이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대통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위해 국민이 들러리로 살아야 하는 듯한 너무나 웃기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국민을 지키라는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이 스스로 권력을 쥐고 절대 권력을 만들어서는 영구 집권을 꿈꾸다 자신의 제일의 심복에게 총 맞아 죽었다. 그것도 기생들 옆에 끼고 양주 마시며 일본 노래 즐기다가 말이다. 이유고 나발이고 잘 먹고 잘 살 게 해주었으니까 뭐든지 괜찮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잘 먹고 잘 살게 해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묻지도 따져서도 안 되는 것이다. 무조건 '박정희의 공功'이라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절대 하면 안 된다. 공功만 이야기 해야지 과過는 무조건 덮어줘야 한단다. 아니 잘 하려고 하다 보니 과過는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니까 그 정도는 아무 문제없다며 괜찮단다. 일부에서는 과過는 없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박정희는 국부國父 그 자체이다. 그리고 전지전능한 유일신(神)이기도 하다. 다른 생각이나 입장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 자체가 불경스러움이고 역적이다. 하지만 백보 양보해서 박정희의 리더십으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면서도 착취와 탄압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서민들의 희생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박정희의 독재와 영구집권의 야욕에 맞서 목숨을 던져 정의를 지켜내고 민주주의를 이루어 낸 수많은 열사들의 뜻을 박정희 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서 무시하거나 훼손해서도 안 된다. 후손들과 조국의 미래를 위한다면 과過도 이야기해야 한다. 박정희가 너무나 사랑했다던 조국의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박정희의 잘못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박정희가 정말 조국을 사랑했다면 그게 그의 뜻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고 있다. 글을 쓰다가 내가 미쳤나보다.ㅋㅋ

 

박정희가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논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전하고자 한다. 같은 논리라면 일제는 '대동아공영론'이라는 그들의 침략전쟁의 논리대로 우리에게는 '조국 근대화의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미국은 우리를 일제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 '조국 근대화의 옆집 아저씨(?)쯤 되는 것이다. 만약 논리로 친다면 그게 바른 논리가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친일부역도, 군사독재도, 유신탄압도, 영구집권 야욕도, 온갖 부정부패도, 지역차별조장도, 아무 이상 없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니까. 그 때는 때가 그랬으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없으니까. 그럼 누가 이 나라를 지키며 목숨을 바칠까. 누가 과연 법을 지키고 정의를 가르칠 것인가. 입만 열면 유행처럼 역사를 들먹이는 것들이 박정희로부터 시작되어 전두환도, 노태우도, 김영삼도, 이명박이도 다 즐겨 써 먹는다. 그래서 역사가 슬프고 우리가 슬픈 것이다.

 

잘못된 역사를 그냥 모른 채 하고 감수하고 감추고 조용히 지나가자고만 하지 말라. 그러고 싶으면 너나 그렇게 하시라. 부끄럽고 잘못된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조건은 아니다. 부끄러워도 말해야 한다. 역사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짧고 편하게 표현하면 '후세를 위한 바른 가르침'을 위한 것이 아닌가. 나라 사랑은 박정희만 할 수 있는 가. 나도 나라를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조국의 역사를, 그것도 부끄러운 역사를 말하는 것이니 제발 시비 걸지 마시라.

 

그대들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공(功)만 말하라. 과장을 하든 미화를 하든 니 꼴리는 대로 하시라. 하지만 나는 과장이나 오버 없이 과(過)만 말하련다.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공평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는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이지 박정희를 흠모하거나 숭배하는 자들을 직접 비난하는 것은 아니니 자격지심은 갖지 말 것. 그리고 나를 비판하려거든 박정희를 흠모하는 그 감정으로 하지 말고 나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논리로 하라. 아닌 건 아니라고, 맞는 건 맞다 하면서...

 

내가 열심히는 살지만 능력이 부족하여 벌어오는 돈이 적어서 생활이 어려울 때 내 아내가, 또는 내 딸이 살림을 돕겠다며 일을 하러 나섰는데, 적게 벌어서 부족하더라도 조신하고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이 좋은 지, 아니면 웃음을 팔거나 심지어 몸을 팔더라도 많이 벌어 와서 새 차도 사고, 아파트로 이사도 하고, 백화점으로 쇼핑도 다니고, 비싼 외식도 하고, 좋은 곳으로 여행도 다니면 과연 당신은 정말 행복하고 좋겠는가?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정말 아무래도 괜찮은가? 아니 그럴 것도 없다. 당신 자신이 조금밖에 못 벌어서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착하게 벌어야 하는 지, 아니면 사기를 치거나 강도짓을 하더라도 한탕해서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지 자기의 생각을 잘 정리하여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무시하려는 생각이 우리와 우리 사회에 너무 넓게 퍼져 있고, 너무 깊게 뿌리 박혀 있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다. ‘복의 근원’이 아니라 ‘악의 근원’인 권위주의에서 파생된 일방주의도, 이중성의 논리도, 이기주의도, 기회주의도, 황금만능주의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2008 서울 남산

 

서울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박정희가 세운 커다란 기념석이 있다. 거기에 <民族精氣의 殿堂>이라는 박정희의 한문 휘호가 새겨져 있다. 가서 볼 때마다 나는(나경원씨처럼 그 부류들에게는 ‘주어’가 필요하므로) 비위가 상해 역겁다. 너무나 억울하다. 너무 유치하고 졸렬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이가 없다. 우리의 근, 현대사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생각이 든다. 어울리든지 말든지 독재자들은 마음이 급하고 목적만 생각나서 그러는 지 그런 거는 다 무시한다. 거기에는 논리도 원칙도 다 필요 없다. 똥오줌 못 가리는 것처럼 물불 전혀 가리지 않는다. 목적만 생각하지 수단과 방법은 아무래도 괜찮다. 욕심이 생기면 모든 것을, 의미조차도 점령과 접수의 대상으로 삼는다. 내가 스스로 주인이 되고, 주인공도 되는 것이다.

 

민족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가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독립운동의 업적마저 박정희가 날로 먹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선 박정희만 유일하게 애국을 한 것처럼 말이다. 그게 절대 권력의 힘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져 자기를 우습게 만드는 것이고,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자기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의식이나 경향에 대하여 제대로 구분하거나 구별할 수도 없겠지만 혹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보수든 진보든, 우익이든 좌익이든 합리성과 도덕성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잃어버린 10년'이란다. 그들에게는 그럴 지도 모른다. 똥물이나 쓰레기에서 살아왔던 것이 최소한 50년이 넘었고, 그 속에서나마 따뜻하고 편안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불만족스럽고 아직도 목마르기는 하지만 오랜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나 햇볕의 따뜻함이며, 공기의 상쾌함을 잠시 즐겼을 뿐인데 말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는데 혼란이 생긴 것이다. 오랜 길들여짐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본디 새로운 것이란 거북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관성에 길들여져서 새로운 것에 적응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불가능하게 여기는 것 같다. 다시 똥물이다. 다시 참기 어려운 쓰레기와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데에는 수구세력들의 총궐기와 선동이 먹혔던 것이다. 경제라는 말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저 만사형통이다. 종교조차도 거기에 목을 맨다. 그 경제라는 신 앞에선 우린 다시 침묵과 굴욕적인 복종만을 강요당하고 있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인색하다. 강자에겐 너무나 약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손가락질 해댄다. 내가 하면 생리현상이고, 남이 하면 에티켓도 모르는 더러운 저질이다. 내가 끼어들면 실수고, 남이 끼어들면 새치기다. 모든 것의 기준은 ‘오직 나 뿐’이다. 무조건 내 맘 대로다. 원칙도 논리도 필요 없다. 무엇이든지 “그때 그때 달라요“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없다. 더 가졌는 지와 나이만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약육강식의 법칙과 수직적인 논리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앞이 아니고 뒤를 늘 그리워한다. 그곳에는 언제나 박정희가 있다. 똥개처럼 짖다가 그 뒤로 숨으면 되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만 들어라! 제발 똥과 오줌은 구별하라. 그리고 제발 똥인지 된장인지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혀로 봐야만 알 수 있다고 우기지 말라. 대가리는 폼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다. 나랑 다르면 다 틀린 것이고 적이라 몰지 말고, 최소한 다른 생각과 입장도 있음은 인정하라. 나만 옳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랑 다르면 모든 것이 적이고 파랑도 노랑도 초록도 다 빨갱이라고 우기지 마라. 자신이 색맹이라고 떠드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흑과 백은 보이나? 구분이나 하나?

 

(2009.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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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3가지…안타깝게 생각”

 

이달곤 행안 장관 후보 청문회이중 소득공제·사외이사 규정위반·논문 중복게재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왼쪽 사진)가 19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이 후보자의 차용증 서류 사본을 들어 보이며 질문하는 동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9일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어 후보로서의 자질과 적격성, 도덕성을 따졌다.

 

특히, 이날 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가 2000년 자신의 장모와 처남에게 2억 원을 빌려주고 받은 차용증이 ‘가짜’이며, 증여세 탈루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이 후보자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시절 공직자 재산신고 때는 처남과 장모에게 2억5천만 원을 빌려줬다고 신고했다가 국회의원 당선 직후(2008년 5월)에는 2억 원을 빌려줬다고 신고했다며, “둘 중 하나는 허위로 신고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같은 당의 최규식 의원은 차용증이 작성됐던 2000년 8월17일엔 이 후보자가 강의와 연구차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는 출입국 기록을 제시하며, “2억 원을 (처남 등에게) 증여하고 증여세 4천여만 원을 포탈하기 위해 차용증을 조작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김유정 의원은 이 후보자가 서울대 사외이사 지침규정을 어기고 민간 회사에서 근무한 점과, 이때 소득을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로 신고한 까닭을 따져 물었다. 또 김희철 의원은 “이 내정자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재임하던 2006년 1월 발간한 ‘정책사례연구’라는 책 내용과 그해 11월 중앙교육원 연수원으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용역보고서의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며 보고서 ‘짜깁기’를 문제 삼았다.

 

이 후보자는 민주당 의원들이 제기한 의혹 대부분을 인정했으나, 일부는 부인했다. 이 후보자는 “살아오면서 부끄러운 일이 무엇이냐”는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의 질문을 통해 “부끄러운 것은 세 가지”라며 △가족 간의 이중 소득공제를 받아 법을 위반한 것 △소득세 처리를 기업에 맡겨 서울대 사외이사 규정에 100% 맞게 처리하지 못한 점 △자신의 글을 젊은 자신감에 과도하게 활용해 현재와 같은 높은 수준의 엄격한 학자적·윤리적 기준을 견지하지 못한 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용증 허위 작성과 증여세 탈루 의혹에 관해서는, “이전부터 나눠 여러 차례 빌려줬던 것을 정리해서 처남으로부터 채무에 관련된 증서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겨레/ 이정애 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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