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찾아왔습니다. 언제나 제 머리와 가슴은 이곳에 두고 살았습니다. 분노와 슬픔은 이제 각오와 희망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날을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떨지 모르지만 조금씩 저도 일어섭니다. 그게 당신의 뜻을 진정으로 기억하고 이어가는 길이라는 걸, 이제 제 가슴도 알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다음까페 시미니즘> 식구로 봉하마을 추수를 돕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어제 먼저 내려온 친구들이 하루를 묵으며 일손을 돕는 동안, 밥벌이에 바빠 새벽기차를 타고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바로 먼저 인사를 드리기 위해 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참 힘이 듭니다. 여기 이렇게 계신 당신을 저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나봅니다.
살아있는 당신의 말들로, 그 따뜻한 웃음과 활기찬 손짓으로 직접 듣고싶은 말씀이 너무나 많은데, 그러셔야 하는데...

어린 손님이 다녀가셨네요.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이젠 다 아시지요? 저희들의 이 마음... 이젠 다 아시지요?

꼭 일 년 전입니다. 친환경 오리농법으로 지은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든 봉하들판에서, 참 자랑스러운 농부셨던 당신.
그 환한 미소를 보며 우리도 그렇게 행복했는데... 이젠 사진속에만 머물러계시네요. 올해도 들판엔 저렇게 황금물결이 출렁이는데. 더 많이, 더 잘 자라 익은 벼들이 이 들판의 주인을 기다리는데.

21일에 오셨던 이희호여사님의 꽃다발이네요. 아직도 참 곱습니다.
올핸 정말 돌아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해가 됩니다. 상상도 못했던 참혹한 시간.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괴로워도 두 분 영부인의 마음만 할까요. 부디 오래오래 서로 의지하며 훗날을 기약하고 건강히 우리 곁에 계셔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렇지요. 훗날 이 역사는 당신을 그런 등불로 기록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참 아름다웠던 영혼, 참 고마웠던 당신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당신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침 일찍이라 아직 참배객의 발길이 많지 않아 다행입니다.
울지 말아야 하는데, 정말 그래야 하는데 왜 이렇게 번번히 눈물을 흘리고 주체를 못하는지. 언제나 이 눈물이 마르려는지. 그날이 오기는 하려나...

그래도 외롭지는 않으시지요? 이런 지극한 사랑을 받을 이가 얼마나 될까요. 참 행복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런 사랑을 받기에 마땅한 분이셨어요.

짜좐~~~~~~~!!! 이거슨 우리 시미니즘의 깃발!!

기억합니다.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겨 기억합니다. 기억하고 널리 전하여 바람이 닿는 곳마다 당신의 말과 뜻이 온 세상에 민들레처럼 퍼지는 날까지 그렇게 당신의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여기만 오면 왜 이리 슬퍼지는지. 이 오두막 상량식하던 날도, 이 자리에 서은이와 나란히 앉아 연못을 들여다보며 행복해하시던 그 미소도 선한데...

이 연지에 가을이 물들고 있습니다. 저 누런 들판 보이시지요? 이렇게 잘 익었습니다. 얼마나 이쁘게 여물었는지 봐주세요.

이 작은 연못에 참 많은 생물들이 삽니다. 여기저기서 뛰는 개구리와 물벌레들, 잠자리들이 아침부터 부산합니다. 자연이 살지 못하는 곳에는 사람도 살지 못하지요. 시골이 고향인 저도 다 알지 못하는 그런 작은 생물들이 참 많습니다. 모두다 당신의 덕분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이 이렇게 봉하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부레옥잠꽃이 이렇게 이쁜지 몰랐어요. 10월인데 아직도 이렇게 곱네요.

지난 여름, 주먹만한 우렁이가 뒹굴던 도랑은 물이 거진 말랐네요. 우렁이와 오리가 쉬던 무논은 어느새 수확이 끝나서 저렇게 한쪽이 비어있습니다.


금방이라도 하늘 바다로 날아갈 것 같은 솟대들. 땅에서 태어나지만 하늘에 몸을 두어 사는 새는 하늘과 땅을 잇는 생명이지요.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염원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바람과 사랑을, 저 하늘 너머에 계신 그분께 전해주리라 기도해봅니다.

진영엔 눈이 닿는 곳마다 감이 주렁주렁 익어갑니다. 가을 아침 햇살에 감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반중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이 아니라도 품엄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을새 그르 섧워하노라
어쩌면 외지에서 보내실때, 고향을 생각하면 봉화대 아래 고향 마을에 가을마다 발갛게 익어가던 저 감들을 생각하곤 하시지 않았을까요?
눈길이 닿는 곳마다, 마음이 쓰이는 곳마다 그분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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