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4/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4/thumb/


샹그릴라1225
조회 1,382추천 12012.11.07

.jpg)


운현궁&궁궐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던 집
궁궐은 아니었으나 궁궐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던 집이다.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고종이 출생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26대 왕이 되는데 그때 나이가 12세였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다스리게 되니
이 집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만했다고 한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궁’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곳은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는데
담장의 둘레만도 수 리에 달했다고 하며,
고종이 머물던 창덕궁과의 왕래를 쉬이 하기 위해
운현궁과 이어지는 흥선대원군의 전용문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입구로 들어서면 이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머물던 수직사가 오른편에 있고
그곳을 지나면 노안당이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대원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껏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양반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해서 만들었다 하며,
처마를 이중으로 두르고 있는 보첨도 이 건물의 볼거리이다.
옆으로 이어지는 노락당은 운현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고종이 명성황후 민씨와 가례를 올린 곳이 바로 여기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이 있는데,
대원군의 부인인 민씨가 살림을 하던 곳이다.
밖에서 보면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듯 보이나
계단을 올라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가운데 중정이라는 ‘ㅁ’자형의 작은 마당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데
안채가 가지는 성격에 따른 폐쇄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이로당을 나서면 앞으로 작은 기념관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주장했던
쇄국정책을 알리는 척화비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등을 모형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펌)
![]() |
![]() |
![]() |
![]() |
|---|---|---|---|
| 4787 | 가을걷이 대동제 "가을봉하" 손님맞이로 바쁜 봉하마을, (13) | 순수나라 | 2009.10.29 |
| 4786 | 2009년 10월 24일~25일 봉하마을 가을걷이 자원봉사 늦은후기 (18) | 당희(당원만이희망이다) | 2009.10.29 |
| 4785 | 장성(구재상님) 벼베기 사진3 (5) | 링사이드 | 2009.10.29 |
| 4784 | 장성(구재상님) 벼베기 사진2 (4) | 링사이드 | 2009.10.29 |
| 4783 | 장성(구재상님) 벼베기 사진 (5) | 링사이드 | 2009.10.29 |
| 4782 | 시골집-109 (3) | 김자윤 | 2009.10.29 |
| 4781 | 노짱님 왼쪽 분이 누구시더라......? (5) | 돌솥 | 2009.10.29 |
| 4780 | 시골집-108 (3) | 김자윤 | 2009.10.29 |
| 4779 | 전두환(78) 노태우(77) '모교를 빛낸 동문들'논란 (11) | 장수아들 | 2009.10.29 |
| 4778 | 오늘 아침 민주공원 가을 단풍 (3) | 가락주민 | 2009.10.29 |
| 4777 | 어제...조기숙교수님,문짝님과 함께 연극데이트 하신 분들... (4) | 386 아줌마 | 2009.10.29 |
| 4776 | " 한 바보가 가면 또 한 바보가 온다" 대구 이어 양산에서 (9) | 우물지기 | 2009.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