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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세상 - 을 꿈꾸었던 또 한 사람

돌솥note 조회 2,385추천 392009.12.24

   
 


의원시절인가 봅니다

출감 후 의원직 사퇴하고 야인으로 돌아 온 이광재의원 그리고 안희정의원
-右광재  희정-라고 흔히들 하지요?
그만큼 노짱님과 가장 잘 맞았던 두 분이 아니셨나 생각됩니다.
노짱님이 -동지-라고 칭하셨던 두 분







작년 7월 하순
평생 스승이셨고 정치동지이신 노짱님 가족을
자신의 지역구로 초대해 여름휴가를 같이 했던 이광재의원.
노짱님이 동심으로 돌아가셔서
생애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휴가를 즐기셨던 것 같았습니다.
아들같은 이광재의원이 든든하게 제 몫을 하는 걸 보고
당신 만나서 고생만 했던 이의원을 보고 대견하고 기쁘셨을겁니다.
그런데 초대했던 이광재의원도
마차에 같이 탔던 강금원회장도
갖은 이유를 붙여 모두 잡아들이니 인간적으로 얼마나 괴로우셨을까요?
당신 혼자만의 고통이었으면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으셨을겁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끝이 없어보였으니...




6월 11일자 기사입니다.

 뇌물을 주었다는 박연차와
받지 않았다는 이광재의원이 대질심문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연하게 보수(? - 원래 '보수'란 참 좋은 의미지요? )언론에서 기사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기사가 제법 많이 떠 있어서 저장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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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이광재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서게 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이 의원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 의원이 받기를 끝까지 거절했는데도
검찰에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윤범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박연차 전 회장에 대한 증인 신문을 요청한
이광재 의원의 표정은 굳어 있었습니다.

이 의원은 박 전 회장에게
지난 2002년 자신에게 건네려 했던
돈 2억 원을 거절하지 않았느냐며 신문에 들어갔습니다.

박 전 회장이 이에 대해 인정하자
이 의원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의원은 이어 돈을 거절했던 자신에게
왜 계속해서 돈을 주려고 했냐며 다시 물었습니다.

한숨을 내쉰 박 전 회장은 이 의원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렇게 진술을 하게 됐다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감정이 고조된 이 의원은 왜 그렇게 돈을 주려 했냐며 되물었고,
박 전 회장은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하다고 답했습니다.

법정에서 피고인과 증인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그렇게 박 전 회장이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박 전 회장은 이 의원뿐 아니라
다른 정·관계 인사들의 재판에도 돈을 건넨 상황을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설 예정입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끝나가는 지금,
박연차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사들의
잘잘못이 어떻게 규명될지가 또 다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mbn뉴스 윤범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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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가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고 끝났다네요.
수차례 걸쳐 10억 정도를 주어도 받지 않았다는 이광재의원.
그런데도 결국 증거도 없이 감옥에 집어 넣었고
이광재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게 되었지요.
쓸만 한 사람은 다 끌어 내리고...

아마 그는 3월25일 밤
노무현대통령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직감하고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옥중에서
- 꽃이 져도 그를 잊은 적이 없다 -
는 추모시를 올려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이광재의원이 구속 하루 전에 쓴 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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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했던 시간,
제겐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정상에 오를 때를 마음속에 늘 염두에 두었지만,
언제 내려갈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려가려 합니다.

여러분의 애정으로 만들어 주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려 합니다
눈물이 쏟아져 글을 써 내려 갈수가 없습니다......
지역구는 제게 표밭이 아닌 일터였습니다.


“태.영.평.정( 태백, 영월, 평창, 정선)을 땀으로 적시겠다”
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제 꿈은 국회의원 몇 번 더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 저는 가난을 여러분과 함께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시절
태현실이 나오는 [여로]라는 드라마가 인기였습니다.
TV가 없던 우리는 누나랑 부잣집에 TV를 보러 갔습니다.
그 집에서는
우리 남매를 개를 풀어 내 쫓은 기억이 있습니다.
누나와 저는 울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 때 기억은
“가난은 죄가 아니며 극복의 대상”
이란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했습니다.
이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공사도 시작되었는데…….
참 안타까운 마음 이루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기회가 적어서이다.
예미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
한 학년이 10명도 안됩니다.
“선배님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글을 보고 왜 그리 마음 아팠는지 모릅니다.
영어공부 하나는 도와주어야지 했던 것이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전국 영어 경진대회를
휩쓰는 모습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어렵게, 어렵게 돈을 만들어
관내 중학생들을 연세대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킬 때
“가난해도, 시골이라고 기죽지 말고 살아라”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자식들의 학교보다
수십배 더 많이 표도 없는 아이들에게
일일 교사를 하고 태영평정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제 관내 교육계는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성공을 보고 끝을 맺어야 하는데......
참 마음 아픕니다.



3. 연탄국회의원을 하고 나선 더 자신을 채찍질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연탄 배달을 할 때 왜 이리 독거노인은 많고,
거의 방치된 아이들은 많은지...
지역아동센터에 들러선 많은 감동도 받았습니다.
철암, 정선, 영월에서
어려운집 아이들을 방과 후에 공부 가르치고
저녁밥까지 먹여 보내는 선생님들
급료도 올려드려야 하는데....

한 할머니가 며느리는 집을 나가고,
아들은 돈벌러가고 손주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
장날에 손주를 길거리에 두고 갔습니다.
누군가 좋은 사람이 데려다 키워주길 바랬겠죠.
그런데 그 아이는 기억력이 있었던지
경찰을 통해 집을 찾아 왔습니다.
그 할머니를 어찌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아이가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총을 사서 할머니를 쏴 죽이겠다”
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4. 어르신 여러분 건강하세요

철암 경로당에 들렀을 때가 생각납니다.
85세쯤 되신 할머니셨는데
내가 늙고 죽는 것은 괜찮은데 62살 먹은 아들이
자꾸 늙어 가는 걸 보면
“세월이 너무 아깝다”
라는 얘기를 듣고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얼마 전 영월 문화예술회관에서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보고
마음속으로 많이들 울었을 것입니다.
경로당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참으로 죄송합니다.

말로만 하는 정치를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 지역구에서 일자리, 교육, 노인복지의 성공사례가
전국의 견학 코스가 되게 할 포부가 있었습니다.
지지고볶고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은 어떻게 사는지,
서민의 꿈은 무엇인지 살피는 정치를 저는 만들고 싶었습니다.

[말]이 아닌 [일의 결과]로 말하는
정치의 문을 열고 싶었습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싶었습니다.

2017년 내 나이 53살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2018년 2월 남북이 동시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날
가장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싶었습니다.
전 세계가 감동하는 날,
장애인 올림픽경기가 가장 성공한 올림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전기를 만들고,
강원도가 다시 태어나는 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틈바구니에 치이는 강원도가 아니라
전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강원도가 됐으면 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꿈을 접으려 합니다......

장성 주공아파트 재건축,
상동온천 개발,
고한에서 상동까지 터널,
생태공원,
경로당,
학교 등등
다 못한 숙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천근입니다.

10월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절대 당에 휘둘리지 말고 가난을 아는 사람,
교육을 살릴 사람,
경로당을 지킬 사람,
무엇보다 마을회관에서
여러분과 울고 웃을 진실한 사람을 만나시길 기원 드립니다.

꼭...

재판에서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진실을 가려내겠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했던 젊은이가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꺾여서 죽는 길을 택하지
부정하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빈들에서,
외롭지만 태백산 주목처럼 견뎌낼 것입니다.

상동 대한중석 사옥처럼,
함백 쌍다리 사택처럼,
철암장성 사옥처럼,
미탄 골짜기 마차처럼,
산의 등줄기 벗겨진 영월 쌍용 산처럼
초라해 지더라도 여러분의 사랑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주셨던 분에 넘치는 사랑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처럼 살아가겠습니다.
물처럼 항상 흘러서 썩지 않고,
웅덩이가 있으면 웅덩이 다 채운 뒤 흘러가는 기다림도 알고,
쏟아질 때 당당한 물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산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여러분의 가르침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아들 같고 친구 같았던 이광재 올림

.
.
.


---- 꽃이 져도 그를 잊은 적이 없다 ----

좋은 나라 가세요.
뒤돌아 보지 말고
그냥 가세요.

못다한 뜻
가족
단심(丹心)으로 모시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21년전 오월 이맘때쯤 만났습니다.
42살과 23살
좋은 시절에 만났습니다.

부족한게 많지만
같이 살자고 하셨지요.

‘사람사는 세상’ 만들자는
꿈만가지고
없는 살림은 몸으로 때우고
용기있게 질풍노도처럼 달렸습니다.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술 한잔 하시면 부르시던 노래를 불러봅니다.

“오늘의 이 고통 이 괴로움
한숨섞인 미소로 지워버리고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맑은 들을 찾아갈테야
오 자유여! 오 평화여!
뛰는 가슴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 버릴 것 같아...“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천형처럼 달라 붙는 고난도
값진 영광도 있었습니다.

운명의 순간마다
곁에 있던 저는 압니다.
보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남자
일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나이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의 모습
항상 경제적 어려움과 운명같은 외로움을 지고 있고
자존심은 한없이 강하지만 너무 솔직하고
여리고 눈물많은 고독한 남자도 보았습니다.

존경과 안쓰러움이 늘 함께 했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불쌍하다”
고 몇 번이나 운 적이 있습니다.

최근 연일 벼랑끝으로 처참하게 내 몰리던 모습
원통합니다.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잘 새기겠습니다.


힘드시거나
모진 일이 있으면
계시는 곳을 향해 절함으로써

맛있는 시골 음식을 만나면
보내 드리는 것으로

어쩌다 편지로밖에 못했습니다.

산나물을 보내 드려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애통합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모시고 다닐 때는
행복했습니다.
풀 썰매 타시는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올 여름도 오신다고 했는데...

이 고비가 끝나면 제가 잘 모실 것이라고
마음속에 탑을 쌓고 또 쌓았습니다.
계획도 세웠습니다.

절통합니다.
애통합니다.

꼭 좋은 나라 가셔야 합니다.

바르게, 열심히 사셨습니다.
이젠 ‘따뜻한 나라’에 가세요
이젠 ‘경계인’을 감싸주는 나라에 가세요
이젠 ‘주변인’이 서럽지 않은 나라에 가세요

‘남기신 씨앗’들은, ‘
사람사는 세상 종자’들은
나무 열매처럼,
주신 것을 밑천으로
껍질을 뚫고
뿌리를 내려 ‘더불어 숲’을 이룰 것입니다

다람쥐가 먹고 남을 만큼 열매도 낳고,
기름진 땅이 되도록 잎도 많이 생산할 것입니다.

좋은나라 가세요.
저는 이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닿는 곳마다 촛불 밝혀 기도하고,
맑은 기운이 있는 땅에 돌탑을 지을 것입니다.
좋은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시도록...
돌탑을 쌓고, 또 쌓을 것입니다.
부디, 뒤돌아 보지 마시고
좋은나라 가세요.


제 나이 44살

살아온 날의 절반의 시간
갈피갈피 쌓여진 사연
다 잊고 행복한 나라에 가시는 것만 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다포(茶布)에 새겨진 글
“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가 떠오릅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주체 할 수 없는 눈물 밖에 없는 게 더 죄송합니다.

좋은 나라 가세요.

재산이 있던 없던
버림 받고 살지 않는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유산은, 내 유산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노대통령님으로부터 받은 유산,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를 아시는 분들에게

봉하 마을에 힘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 거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아시는 분들
제가 말하는 맑은 기운이 있는 땅, 탑을 쌓을 곳이
어디인지 아실 겁니다.
본격적으로 탑을 쌓고 지읍시다.

노대통령님 행복한 나라에 가시게
기도해 주세요.
가족분들 힘내시게

찻집에서 본 다포(茶布)에 씌여진 글귀가 생각납니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끝없이 눈물이 내립니다.

장마비처럼

--- 이광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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