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509/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509/thumb/

home > 사진·영상 > 참여갤러리

참여갤러리여러분들의 사진과 영상을 공유 할 수 있습니다.

겨울밤

수월note 조회 500추천 102010.01.11

참으로 추운 계절이다.
망할노무 날씨가 춥다보니 어쩌면 모임이 많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의 온기가 필요 할 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그 비싼 쇠고기를 이틀 연속으로 먹었다.
그것도 최고급의 한우를 먹은 것이었다.

어제도 고령장엘 갔었다.
“뭐하러?”
“국밥 한 그릇 하러“
고령장에도 국밥집이 댓 군데는 있다.
모든 곳을 섭렵한 결과, 위생과 곁들여 나오는 반찬은 형편없지만 머릿고기가 들어 가 식감이 좋고 양을 넉넉하게 말아주는 한 집을 나는 유난히 고집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의 한파가 얼마나 지독했었던가?
이 엄동설한인데도 시장통의 찬바람이 제멋대로 드나드는 난전에서 밥을 먹었던 것이다.
뜨거운 국밥이라도 금방 따스운 기운은 사그라드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먹는 것이 고역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더우나 추우나 나는 그 난전의 국밥을 한 그릇 먹어야 5일이 제대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고령 읍내에서 전기 전력 업으로 먹고사는 하은국(해중미새 - 미새) 저 인사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이가 들어 더 친숙해진 동생이다.
그 세월이 15년 이상이 됐으니 이젠 그 정을 뗄려고 해도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세 살이 많다보니 저 친구는 나만 따라 무작정 오는 것인데....
고령장날만 되면 나는 저 인사의 집으로 스며들고, 그 다음 코스는 자연히 그 국밥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둘이 앉으면 소주 한 병을 시켜 국밥 한 그릇을 맛나게 먹는 것이고.

내가 장날이면 빠지지 않고 장날 맛을 보다보니 그것도 소문이나 어떤 인사도 나와 비스무레하게 장을 가는 형 부부(묵촌 댁)도 생겨났다.
나는 거의가 오전 일을 11시까지 하고 장으로 출발을 하는 것인데 저 형은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때에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장에 안 오나?”
사실 장이라는 것이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사는 목적도 있지만 저노무 국밥을 한 그릇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할 수가 있는데...
기실 물릴 법 도한 저 국밥을 주야장청 나 혼자만 편애를 한다는 것이다.
장에서 만나면 밥을 먹어야 할 것이고, 그기다가 반주를 곁들여야 그 흥취가 나는 것인데...
장에서 만나도 밥은 따로 먹는 것이었다.
우리가 국밥을 먹고 묵촌 형한테 전화를 하니 경월 언냐(이 녀편네도 국밥을 먹지 않는다)를 장터에서 만나 갈치 정식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너거 또 국밥 무웃재?”
국물을 자잘하게 요리한 갈치 찌개가 맛나보였다.
묵촌 형수는 소주 한 병을 시키고...
허름한 식당의 구들장이 슬슬 끓고 있었다.
갈치의 잔가시를 고르며 나는 두어 잔의 소주를 입에 틀어넣었을 것이다.
미새 저 친구의 입에서 말이 느물하게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독재도 저런 독재가 없을 끼다”
슬슬 끓는 방에서 정다운 사람들과 맛난 음식을 먹는데 갑자기 독재자라는 말이 나왔으니 모두들 뜨악하지 않았겠는가?
“김정일도 아니고 우째 그런지...”
나는 아차 싶었다.
“이래 뜨뜻한 방에서 먹는 갈치 찌개 저거 얼마나 맛있겠노? 뭔노무 원수가 져서 죽어나 사나 국밥이라는 말이고....”
“내가 쿠데타를 칵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없고 뭣이 그렇지 않겠습니꺼?”
국밥만 고집하는 나를 두고 씨부렁 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할 말이 있었겠는가?
그저 씨익 웃으며 소주잔이나 바라 볼 밖에.ㅋㅋ

쇠고기를 먹었다.
토요일은 6명이서 함께하는 계추가 있어 개업을 한 친구 집에서 육회와 구이를 먹었다.
소 농장을 운영하며 오래 전부터 식당을 한 이 친구가 한적한 장소에서 쇠소기 집을 연 것이었다.
이 쪽 지방에도 쇠고기 열풍(당연히 A+등급 정도의 품질을 사용한다. 명품이라 해야한다. 도시에서는 두 배 이상의 값을 지불해야한다. 횡성 한우라고 하는데 그것도 이름값이다. 소의 육질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좌우한다)이 불어 심심찮게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쇠고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차피 비싼 돈을 주고 먹는 것이니 그래도 맛난 집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곳은 농협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지방에서 기른 소를 잡아 고기만 팔고 먹기는 식당을 임대 내어준 식당을 이용하는데 전기 열을 이용해서 굽기 때문에 그 고소한 맛을 옳게 잡아 내 주지를 못한다.
그래서 입맛이 까다로운 내가 이용하기에는 쉬운 편이 아니다.
차라리 고기를 사와서 성가시지만 집에 화톳불을 피우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친구가 전문 식당으로 개업을 했다고 하니 그 솜씨를 안 볼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맛있게 먹었다고 표현을 하고 싶다.
이것이 결론이라고 말을 하는데...
믿어도 된다는 말씀이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꼭 한 번 가보시라는 예기다.
장소는 숭산 초입의 미꾸라지 농장이라면 아실 것이다.

오늘 저녁은 뒷집 형님네에 초청을 받아 또 육회를 맛나게 먹었다.
중국 음식의 달인인 뒷집 형님을 나는 가히 음식의 장인이라고 당당하게 자랑을 하고 다닌다.
전국 어느 곳의 중국 음식점을 다녀보아도 저 형님이 만드시는 맛에는 못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 형님은 한식에도 노하우가 많으신 분인데(실제로 한식도 팔았었다) 무엇 하나 손길만 가면 명품이 되는 것이었다.

오늘 골동품 경매장이 서는 날이라 낮에 거기서 기웃거리고 있는데 전화가 온 것이었다.
“육회 꺼리 사왔다. 온나.“
사정이 그러해서 그렇다고 하니...
“그러면 저녁 약속을 하자”
해서 저녁밥을 하지 않고 경월 언냐와 함께 방문을 했던 것이다.
동네의 다른 사람들은 없고 독 짓는 아저씨만 와 계셨다.
사연을 들어보니 저 아저씨가 형님한테 돈을 건네며 육회를 좀 드시고 싶다고 하셨던 것이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겸손을 겸손답게 행사를 할 줄 아시는 어른이라 우리가 존경을 하며 다문 자장면을 먹을 자리라도 같이 모시고 가는 사이인 것이었다.
저 어른이 육회를 드시고 싶다고 젊은 사람한테 돈을 건넬 때는 나름의 사정이 있으시지 않았겠는가?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생활을 하신다.
꼭 자시자면 택시를 타고 나가서 자시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드시는 음식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 지라도 그것이 그러한 맛이 나겠느냐는 것이다.
그차에 형님이 도살장이 있는 고령을 나가신다니, 익히 알고 있는 음식 솜씨로 손맛을 보여 달라는 말씀인 것이었다.
그 자리에 우리 부부를 초대했던 것이다.






계추에서 먹었던 육회이다. 서울에서 배운 것이라는데...
간장 맛이 너무 진했다.
고쳐야 할 부분이다.
대신 아래의 구이는 맛이 너무 훌륭했다.
곁가지의 반찬도 무난했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문제의 달력이다.
합자회사 대현상사.
아랫도리가 휘날리는 술 도매상 달력이다.
웃어야 하는 것이었다.












돼지치기를 업으로 하는 선후배들의 모임이다.
서로가 정보 교환을 많이 한다.
또한 도움이 엄청나게 된다.
식구라고 해야 할 정도의 사이들이다.

매월 초에 하는 모임을 나는 내가 바빠서 앞에 두 번인가를 참석하지 못했다.
신년에서는 처음이 아니겠는가?
모두들 술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니 차가 문제인 것이었다.
그 중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태울 수 있는 우리 차로 세 팀이 이동을 했다.
가면서 용찬이라는 후배는 이런 멘트를 하는 것이었다.
"형님. 차를 언제 샀습니꺼? 나는 그것도 몰랐네. 한 턱 내야 되지 않겠습니꺼?"
물론 저 인사가 하는 흰말인 것이었다.
"망할노무 인사야 10개월이나 됐다. 먼 뒷북이 그리 심하노?"

식당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분위기를 살피니 그 분위기가 분위기 다운 것이었다.
두 번째 좌장인 내가 나설 필요가 있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오면서 용찬이 저 선수가 차가 우떻고 하면서 지라알을 하던데 고마 내가 돈을 조금 낼 것이니 2차로 가자"
당연히 환호성이 터졌을 것이 아니었겠는가?








뒷집 형님이 만드신 육회이다.
먹으며 나는 간에 대해 물었다.
참기름과 아주 맛있는 소금만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배를 회와 같이 무치면 안 되고 같이 집어서 먹으란다.



이 형님은 쇠고기 부산물을 가지고도 맛을 아주 잘 내신다.
선지가 들어 간 곱창전골이다.
맛을 안보고 어떻게 여러분들은 이 맛을 아시겠는가?
"흥식이 니는 따뜻한 국물을 좋아해서 만들었다"
나 혼자 반 그릇은 먹었을 것이다.
호사는 호사인 것이었다.




가운데 앉으신 분이 독 만들기 장인이시다.
저러한 겸손함을 가지셨다.
사람이 사는 맛을 나게 만드는 분이시다.

출처 : http://blog.paran.com/hs1109?p_eye=blog^hom^log^blo^myblog

이전 글 다음 글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5495 농군정호님께 드리는 청원의 글! (45) 어비 2010.01.12
5494 행동하지 않는 양심 (2) chunria 2010.01.12
5493 민주공원(2010 1 11) (4) 가락주민 2010.01.12
5492 그날을 돼새기는 유품 (4) 황석산 2010.01.12
5491 쪽나무를 아시나요? (9) 돌솥 2010.01.12
5490 오랜만에 부친 [노랑 스카프] (14) 우물지기 2010.01.12
5489 우리 사사세 모든 회원님들 경안년 새해도 행복 하세요 (2) 기분 조~오타 2010.01.12
5488 조중동 덕분에 창신섬유 협찬을 받았습니다. (10) 대 한 민 국 2010.01.12
5487 1월 9일 국토 순례단 속에 있었을 아들... (7) 치자향기 2010.01.11
5486 정치는 삶이다!!! (8) 돌솥 2010.01.11
5485 행복과 고난은? (1) chunria 2010.01.11
5484 잠시 쉬면서? (1) chunria 2010.01.11
502 page처음 페이지 501 502 503 504 505 506 507 508 509 510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