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진·영상 > 참여갤러리


귀천(歸天)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돌솥
조회 1,123추천 282010.03.09

제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학교는
교무실이 아주 협소해 직원 모임을 도서실에서 하게 됩니다.
학교일이란 게 매일 거기가 거기다 보니
전달 사항이 거의 매주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미리 와서 직원모임 시간에 읽을 책을 서가에서 골라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날은 핸드백으로 가리고 몰래 책을 읽습니다.
물론 좋은 습관은 아니지요?
수업시간에 만화책 보는 수업태도 불량한 학생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우연히 뽑아든 책에서 -천상병 시인-의 이야기를 읽고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천상병 시인이 원래 타고나기를 좀 부족(?)하게 태어난 분인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그가 당대의 수재들이 다니다는 서울 상대를 다니다
1967년 당시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공작단 사건"이라는
흔히 말해 동백림 사건에 엮여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정희정부에서는 북한과 은밀히 연루되었다고 하여서
죄도 없는 예술인들이나 문인(文人)들을 대거 체포하여
그야말로 덮어놓고 고문부터 해서 사람 병신으로 만들어
더이상 예술활동과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답니다.
그 사건에 천상병 시인도 연루되어 갖은 고초를 당하게 되었고,
우리 이미지로 남아있는 천상병 시인의 그 모습은
고문 당시 얻은 휴유증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심한 질병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실체라는 것이
당시에도 천진난만하고 순진했던 천상병 시인은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였던
강빈구(姜濱口)라는 사람과 친하게 어울렸는데,
그 강빈구란 분이 독일 유학중 동독을 방문했었다는 얘기를 천상병에게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평소 다른 문인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강빈구로부터도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 중앙정보부 발표문에는 한 인간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그의 죄명(?)을
"강빈구씨는 간첩활동을 하고 있어 상피의자로 하여금 공포감을 갖게 한 뒤에
수십여 차례에 걸쳐서 1백원 내지 6천5백원씩
도합 5만여원을 갈취착복하면서 수사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라고 쓰여있었답니다.
이 것이 천상병 시인이 "국사범"으로 조작되는 사건의 실체였고
전도 유망한 한 청년의 인생을 정권유지를 위해 망가뜨린
그 당시에는 너무도 흔했던 일들 중 하나였답니다.
그 시절 최고의 수재들만 갈 수있다는 서울상대에 다니던 청년을 고문으로
정신박약아처럼 만들어 놓은 것도 가슴 아프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자식을 갖지 못함을 늘 아쉬워하는 대목과
유별나게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는 대목을 읽으며
-무슨 권리로 한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철저히 짖밟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분노와 함께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일들을 오십이 훨씬 넘어서 겨우 알게 되었을까?
그 시대엔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워넝소리 요란했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지금도 ㅈㅈㄷㅁ에 코 박고 사는 사람들은 똑 같더라구요.
그런 독재자의 딸이 대선 후보군로 나와서 -정의와 민주-를 부르짖고
청렴과는 먼 이미지의 대통령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고
강금실 법무장관이 -코메디야 코메디- 했던 말이 떠 올랐습니다.
정말 코메디가 따로 없습니다.
-웃찾사-도 울고 갈 일입니다.
단군이래 최대의 언론의 자유( 방종에 가까운 )를 누렸으면서
참여정부가 '언론을 탄압'을 했으며
노짱님이 '전두환보다 더 심한 독재자'라는 말들을
부끄럼없이 토해내던 그 때 야당 대변인들을 생각하니
-얼굴도 두껍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희안한 세상에 살았고, 또 살고있다는걸 매일 느낍니다.
임기말까지 그 암덩어리같은 언론을 바로잡고 싶으셨던 노짱님.
-정부부처 청와대 출입 기자실- 폐쇄에 항의해
-언론탄압-이란 활자를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올리며
기자실에 드러눕던 기자 양반들.
요즘 다 뭣들 하시나 궁금합니다.
그 때가 언론탄압이었으면 지금은 割腹이나 投身정도는 해야할 것 같은데......
http://blog.naver.com/rhyu/20048419295 (클릭)
2002년 노짱님을 알고 부터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 지나간 세월을 다시 학습하며 살았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제가 -한 사람-을 만남으로 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게 열리게 되었다구요.
그 한 분으로 인해 '앎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살았고 지금도 누리고 있습니다.
땡큐! 노짱님.
그런데 요즘은 그 기쁨보다는 슬픔, 분노, 아픔....등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 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 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이로 배추 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 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 하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가의 이야기이디.
평생 돈의 셈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의 소풍 왔던 천사처럼 순진무구하게 살다 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 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1967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히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 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 시집 '새'를 출간하고...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 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
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 사건 이 후 그의 시세계는
죽은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이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 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엇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나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귀천'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 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 화가, 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이 역시 아이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
"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
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의 행복에 대한 고백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하루에 용돈 2천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 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셨다.
바늘 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 퍼온 글 )

--- 귀천(歸天)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