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1/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1/thumb/


샹그릴라1225
조회 1,048추천 12012.11.07

.jpg)


운현궁&궁궐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던 집
궁궐은 아니었으나 궁궐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던 집이다.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고종이 출생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26대 왕이 되는데 그때 나이가 12세였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다스리게 되니
이 집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만했다고 한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궁’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곳은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는데
담장의 둘레만도 수 리에 달했다고 하며,
고종이 머물던 창덕궁과의 왕래를 쉬이 하기 위해
운현궁과 이어지는 흥선대원군의 전용문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입구로 들어서면 이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머물던 수직사가 오른편에 있고
그곳을 지나면 노안당이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대원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껏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양반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해서 만들었다 하며,
처마를 이중으로 두르고 있는 보첨도 이 건물의 볼거리이다.
옆으로 이어지는 노락당은 운현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고종이 명성황후 민씨와 가례를 올린 곳이 바로 여기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이 있는데,
대원군의 부인인 민씨가 살림을 하던 곳이다.
밖에서 보면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듯 보이나
계단을 올라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가운데 중정이라는 ‘ㅁ’자형의 작은 마당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데
안채가 가지는 성격에 따른 폐쇄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이로당을 나서면 앞으로 작은 기념관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주장했던
쇄국정책을 알리는 척화비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등을 모형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펌)
![]() |
![]() |
![]() |
![]() |
|---|---|---|---|
| 6263 | 천안함 해군장병 시신을 고깃국물이라 비하한 군의관 법정구속 서명운동 (1) | 노무현대통령님가지마세요 | 2010.04.16 |
| 6262 | 벚꽃 (3) | 김자윤 | 2010.04.16 |
| 6261 | 봄, 봄, 봄... (4) | 돌솥 | 2010.04.16 |
| 6260 | 남겨진 자의 자존- 딴지일보에서. (3) | 소금눈물 | 2010.04.16 |
| 6259 | 듣는 자가 되라 (2) | 돌솥 | 2010.04.16 |
| 6258 | (영상)퇴임 2일후 대통령님 가족분들과 함께 (12) | 푸른소나무@ | 2010.04.16 |
| 6257 | 삽질에 올인하더니 ...MB가 이제와서 후회한다고 하는군요!! (4) | 대 한 민 국 | 2010.04.16 |
| 6256 | 아프리카의 '한국인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5) | Marine Boy | 2010.04.15 |
| 6255 | 벽 (4) | 김자윤 | 2010.04.15 |
| 6254 | 오늘 해질무렵의 봉하마을 (14) | 등불 | 2010.04.15 |
| 6253 | 봉하는 봄을 부른다. (4) | chunria | 2010.04.15 |
| 6252 | 한명숙.....백합보다 아름다운 사람.... (4) | 들에핀꽃 | 2010.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