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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묘역에서 2- 신(新)묘역

소금눈물note 조회 537추천 15201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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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안소를 나와 추모탑으로 가다보면 만나는 그 유명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가 새겨진 김준태시인의 시비입니다.

이 시의 전문입니다.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히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 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아이를 벤 몸으로
이렇게 죽은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허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을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한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쳤 있다. 확실히
굳게 손 잡고 일어선다


시인은 이 장문의 통곡과도 같은 시를 단 한 시간에 걸쳐 토해냈다고 하지요.
피흘리며 쓰러진 광주에 부쳐진 제문이 된 이 시는 광주의 영령들을 위로하고 그 엄혹한 시간속에서도 깨어있던 사람들을 울리고 아시아로, 세계로 흘러가 오월을 상징하는 통곡의  노래가 됩니다.
깨어있는 시인의 붓은 군인의 칼보다 더 날카롭게, 뜨겁게 펄펄 살아 그날의 분노와 슬픔을 증거합니다.





(군부의 검열이 거친 1980년 6월2일자 전남매일 신문)

이 시가 실렸던 신문입니다.
삭제, 삭제, 삭제...
붉은 펜으로 죽죽 그어진 낡은 이 한장의 사진이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들의 죄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국민의 귀와 입을 틀어막으려던 이들, 그리고 그 침묵으로 인해 얻은 것이 많은 그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날 침묵과 외면으로 광주를 두 번 죽게 했던 그들의 지금은 그날과 또 얼마나 같은 모습으로 우리 옆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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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보아다오 파괴된 나의 도시를
보아다오 부러진 낫과 박살난 나의 창을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잘려나간 유방을
보아다오 학살된 아이의 눈동자를


(김남주 詩. 학살 3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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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가슴이 턱 막혀서, 어쩌면 나그네의 부질없는 발걸음이 그나마 어렵게 잠들어있는 이 분들을 사위스럽게 흔드는 건 아닌가 두렵기도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그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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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부터 시간 순대로 나란히 잠들어있는 영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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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분!
오월의 신부로 우리에게 남겨진 최미애님의 자리...

당시 스물 세살.
임신 팔개월의 새색시는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여기에 잠들어 있습니다.
M16총탄에 후두부가 날아갔다지요.
쓰러진 그녀의 머리 아래 "두부같은 것이 으깨져 쏟아져 있었다"고 합니다.
총탄에 즉사한 엄마의 뱃속에서 한참이나 펄떡거리던 아기의 발길질. 모태의 죽음을 직감하면서 살려고 발버둥치던 그 생명이 또 그렇게 여기에, 엄마의 품속에 영원히 잠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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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뒷면에 새겨진 그 젊은 남편의 슬픈 사랑의 말.
하늘 어느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천사...

더는 생각나는 말이 없습니다.
금가루처럼 곱게 부서지는 봄햇살 아래 그저 나는 망연히 사진 속의 고운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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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이름 윤상원...
광주가 마지막으로 짓밟히던  도청의 그날 마지막 사람.
전남대 정치외교학교 졸업, 몰 당시 서른살의 청년.

"화려한 휴가" 속의 도청 사람들 얼굴이  이 이름 아래서 하나하나 선연히 떠오릅니다.
들불야학을 하다 과로로 숨진 고운 처녀와 거기서나마 부부의 연으로 나란히 잠들어 있으니 덜 외로울까요.
그는 오늘의 우리를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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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봉분이 그나마 유골이라도 남긴 영령들의 잠자리였다면, 이곳은 유해를 찾지 못하고 "행방불명"이 된 분들의 자리입니다.
여기 묻힌 분들의 유가족들은 그나마 소담한 봉분이라도 가질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부러울까요.
어디로 갔는지, 그 몸과 뼈는 어디에서 버려져 비바람에 흩어졌는지, 가슴에 묻고 한으로 남은 분들의 슬픔은 어찌할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선연히 기억나는 게,  제가 어렸을때 제가 살던 마을 바로 윗동네에 이삼십 명의 젊은 사람들이 모여살았어요.
넝마주이하던 분들의 마을이었지요. 그런데 광주의 그 일 있고 나선 정말 거짓말같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어요. 정말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그 분들은 고아들이라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무적자(無籍者)였지요. 그야말로 서류상에서는 대한민국에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들. 그때는 그런 일이 아주 흔했어요. 그런 분들이 그 와중에 휩쓸려들어가 돌아가시고, 서류상 태어난 적도 없는 분들이니 아예 그분들의 죽음을 기록하고 남길 수도 없었지요.... 그땐 그런 일이 많았어요..."


안내해주시던 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봉분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 유해를 찾지 못한 분들, 그리고 그분들보다 더 서러운 분들...
하늘이 주신 목숨을 다 쓰지 못하고 억울하게 꺾인 한이야 어찌 다 이르겠습니까만 죽음에도 주검이  되지 못하고 그저 잊혀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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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챗살처럼 퍼지는 햇살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봄날입니다.
비 뒷면에 빼곡히 적힌 보내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눈물의 사연들이 둥그렇게 잠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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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한쪽에 기념관이 있습니다.
당시의 처참한 모습과 책임자들의 모습, 그리고 이 오월광주가 세계로 어떻게 뻗쳐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이요원씨의 눈물로 귓가에 쟁쟁한 이 절규 방송, 기억나시지요.
예술이든 문화든, 현실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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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들은 지켜져야 한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가 있었지요.
그 말을 그들은 그렇게 마지막 목숨으로 지켰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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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차에 실려 망월동으로 실려갔던 유해들을 덮었던 피묻은 태극기입니다.
나중에 묘역을 다시 정리되면서 나왔습니다.
이 기념관에는 당시의 총이며 탄환, 유해를 덮은 비닐, 이런 태극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큰 호흡을 하고 들어서야 하는 곳이지만 지나쳐서는 안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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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면 가득, 여기를 다녀간 이들이 남긴 메모가 가득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고 널리 전하겠습니다.
이제 편안히 잠드세요.

저도 한 장 붙이고 나옵니다.

이제 제가 오래전에 가 본 그 망월동, 구 묘역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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