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급과 세대가 만나는 지점에 희망을 만들어라"
제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 숨을 거뒀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도움을 받아 학생회관에 분향소가 차려졌고 국민들의 분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박종철 군이 고문에 목숨을 잃은 뒤라 전국이 들끓었던 시기였는데 화약고에 기름을 붇는 격이 됐습니다.
연대 정문에서 학생회관까지 백양로 길에는 수많은 국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길게 늘어진 길은 며칠이 가도 줄지 않았고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에는 갓을 쓴 노인과 유생도 있었고 한복을 입은 할머니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세대와 계급, 계층이 모여들어 이한열 군의 죽음을, 질식된 이 땅의 민주주의을 애도하고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도서관에서 길게 늘어선 그 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슬픔과 그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한줄기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감시와 처벌, 억압과 착취에 숨죽여 살아야 했던 국민들이 함께 했고 마침내 6.10항쟁의 위대한 여정은 시작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세대와 계급이 하나로 융합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거대한 힘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지만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열망은 승리의 순간,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때 기득권자와 기회주의자들이 다시 밖으로 나와서 승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세계를 그들이 알고 있는 이전의 세계와 비슷한 것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승리의 순간에 환희는 맛볼 수 있었지만 승리의 수당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때 중심에 섰던 사람들이 지금의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변명 같을 지라도 세대에 대해서 말한다면 4050세대는 그때에 역사적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사회로 나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했고, 결혼했으며 한 집안의 가장으로 아이를 키우고 부모님을 봉양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생활인으로 변해갔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계급과 세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승리의 에너지와 연대의식이 자리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세대는 있고 계급(계층)은 나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시대정신과 사회는 얼마쯤은 다르고 얼마쯤은 같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있기에 그 본질적 뿌리에서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의견이 다르고 삶의 경험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니 생각과 견해가 다를 수 있는 것이지요따라서 서로를 원망하거나 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껴안고 사과하며 손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는 낮에 꿈을 꾸고, 누구는 밤에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정의와 이상을 추구하다 자신의 삶을 소모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형태의 삶을 살건, 모든 인간에게는 나름대로의 상식과 이성이 있습니다. 약간은 비겁하고 약간은 용감하고자 하는 그 사람들은 세대와 계급으로 나뉘어 현실의 굴레에서 허덕이거나 꿋꿋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득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이렇게 세대와 계급으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 의견을 함께하고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 지점에서 혁명의 기운이 싹텄고 기존의 세력들을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서민의 삶과 권리는 한 단계씩 상승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어느 세대에 있던 비슷한 계급(계층)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그들 간의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세대와 계급(계층)을 이어주는 끈만 찾으면 6.10 민주화 항쟁처럼 어마어마한 힘이 분출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이번 총선 결과로 우리가 목표한 것에 다가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가지 목표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서 우리의 눈이 흐려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이것만은 반드시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다른 세대로 나뉘었지만 비슷한 계급(계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 손잡고 우리의 요구를 확고하게 정하는 것입니다.
이명박처럼 아무리 무도한 자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의 요구만은 들어주지 않을 수 없도록 말입니다. 물론 최선의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먼저이겠지요.
일부 보수 정치평론가처럼 자꾸 진보 진영의 갈등을 조장하고 세대 간, 계급(계층) 간의 반목을 조성하며, 박근혜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정치평론가의 근본마저 내팽겨 친 그의 말은 아예 무시하면서 말입니다.

글쓴이: 늙은도령(다음 블로그 늙은 도령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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