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5/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5/thumb/


샹그릴라1225
조회 1,554추천 12012.11.07

.jpg)


운현궁&궁궐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던 집
궁궐은 아니었으나 궁궐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던 집이다.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고종이 출생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26대 왕이 되는데 그때 나이가 12세였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다스리게 되니
이 집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만했다고 한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궁’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곳은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는데
담장의 둘레만도 수 리에 달했다고 하며,
고종이 머물던 창덕궁과의 왕래를 쉬이 하기 위해
운현궁과 이어지는 흥선대원군의 전용문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입구로 들어서면 이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머물던 수직사가 오른편에 있고
그곳을 지나면 노안당이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대원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껏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양반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해서 만들었다 하며,
처마를 이중으로 두르고 있는 보첨도 이 건물의 볼거리이다.
옆으로 이어지는 노락당은 운현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고종이 명성황후 민씨와 가례를 올린 곳이 바로 여기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이 있는데,
대원군의 부인인 민씨가 살림을 하던 곳이다.
밖에서 보면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듯 보이나
계단을 올라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가운데 중정이라는 ‘ㅁ’자형의 작은 마당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데
안채가 가지는 성격에 따른 폐쇄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이로당을 나서면 앞으로 작은 기념관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주장했던
쇄국정책을 알리는 척화비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등을 모형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펌)
![]() |
![]() |
![]() |
![]() |
|---|---|---|---|
| 6983 | 06/13 일요일 오리군 공식 일꾼으로 등장 (12) | 보미니성우 | 2010.06.13 |
| 6982 | [蒼霞哀歌 81] 전투준비!! 농군이여~~ 전진하라!! (8) | 파란노을 | 2010.06.13 |
| 6981 | 06/12 장군차밭 머리깍기와 오리들의 준비운동 (14) | 보미니성우 | 2010.06.12 |
| 6980 | 잊지 맙시다!!! 미선이와 효순이. (4) | 순 수 | 2010.06.12 |
| 6979 | 천안함 북한어뢰는 거짓 (5) | chunria | 2010.06.12 |
| 6978 | 잘 났다, 한겨레!!! (13) | 돌솥 | 2010.06.12 |
| 6977 | 염색 (4) | 김자윤 | 2010.06.12 |
| 6976 | 백원우의원이 주는 교훈(펌) (1) | chunria | 2010.06.12 |
| 6975 | 서울검객! (5) | 돌솥 | 2010.06.12 |
| 6974 | 축구로 내전을 종식 시킨 자 (야후 재미존 펌) (3) | 하이닉스 ENG | 2010.06.12 |
| 6973 | 미주지역 주부들의 창신섬유 담요와 대통령님 달력 공동구매를 통한 후원.. (18) | 미쿡아짐 | 2010.06.12 |
| 6972 | 빛 (5) | 조의국선 | 2010.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