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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11월7일&사람사는세상&도심올레&운현궁...

샹그릴라1225note 조회 999추천 12012.11.07

 

 

 

 

 

운현궁&궁궐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던 집

궁궐은 아니었으나 궁궐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던 집이다.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고종이 출생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26대 왕이 되는데 그때 나이가 12세였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다스리게 되니

이 집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만했다고 한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궁’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곳은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는데

담장의 둘레만도 수 리에 달했다고 하며,

고종이 머물던 창덕궁과의 왕래를 쉬이 하기 위해

운현궁과 이어지는 흥선대원군의 전용문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입구로 들어서면 이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머물던 수직사가 오른편에 있고

그곳을 지나면 노안당이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대원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껏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양반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해서 만들었다 하며,

처마를 이중으로 두르고 있는 보첨도 이 건물의 볼거리이다.

옆으로 이어지는 노락당은 운현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고종이 명성황후 민씨와 가례를 올린 곳이 바로 여기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이 있는데,

대원군의 부인인 민씨가 살림을 하던 곳이다.

밖에서 보면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듯 보이나

계단을 올라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가운데 중정이라는 ‘ㅁ’자형의 작은 마당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데

안채가 가지는 성격에 따른 폐쇄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이로당을 나서면 앞으로 작은 기념관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주장했던

쇄국정책을 알리는 척화비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등을 모형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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