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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일) 홍대 부근 주점 별난포차에서 저녁 7시부터 유쾌한 민란 서울번개가 있었습니다.
백만민란의 선봉장 배우 문성근은 이 날 고양시에서의 거리행동을 마치고 전 날 분신을 시도한 구미 KEC 노동자 (김준일 금속노조 구미지부장)가 입원한 한강성심병원에 들렸다 오느라 도착이 늦어졌습니다.
배우 문성근을 기다리면서 참석자들은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꾸로 흘러가는 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국민의 힘으로 바로 세우겠다는 뜻을 가지고 여러 지역의 다양한 연령, 직업을 가진 참석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민란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관심이 있고 어떤 분들이 나오나 궁금해서 나와봤다는 분도 있었고 제안서를 인쇄해서 독자적으로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힌 인천지역 노사모 대표도 있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를 존경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배우 문성근도 좋아하여 나오게 됐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소개 시간 도춪에 배우 문성근도 도착하여 참석자들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참석자들의 소개가 끝나고 배우 문성근이 참석자들에게 인사와 함께 건배를 청했습니다.
문성근은 자신이 야권연합정당을 목표로 하는 백만민란을 꿈꾸게 된 계기와 그 당위성 및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11월 13일 공주에서 열리는 우금치 행사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를 당부했습니다.
"2009년에 문목사 방북 20년이 되서 동교동 가서 김대중 선생을 뵈었습니다. 그 때 김대중 선생이 삼대위기를 말씀하셨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를 말씀하시면서 '나는 늙어서 더 이상 싸우는데 한계가 있으니 니가 열심히 싸워라.' 라고 얘기를 하실 때도 '나는 배우 하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말씀을 하시나' 하면서 결심을 못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 서거 일주기 행사를 하는데 저보고 5분 동안 뭔가 맡으라고 애기하더라구요. 문화행사인데 참여정부 관계 문화예술인이 명계남, 이창동, 저 셋 밖에 없는데 그것도 안할 수는 없어서 5분 스피치를 맡았습니다.그런데 20일 동안 글을 한 줄도 못썼습니다. 무슨 말을 할지. 혹시 그 분 연설 중에 쓸 말이 없을까. 봤던 연설을 다 되돌려서 보고 인터넷 TV 대담도 다시 보고 창평포럼 강연도 전부 다시 보고 하면서도 한 줄도 못썻습니다. 연출가 탁현민에게 '못하겠다. 니가 대본써서 보내주면 하겠다' 하니까 글을 보내왔는데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이어서, 구름이 떠가고 하늘에 어떻고 하는 글이어서, 만취해서 써봤습니다.
그리고 성공회대에서 하고 그 다음 날 광주가서 했죠. 그런데 그 다음 주 대구 가면서부터 견디기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라구요. '대구에서도 콩이면 광주에서도 콩이고 대전에서도 콩인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연설을 들으면서 대구에서는 뭐라고 해야할까? 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을 배우를 하겠다면서 꼭 눌러왔던 얘기들이 병맥주 터지듯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창원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데 천 몇백명이 조금도 자리를 뜨지않고 모여 계신데 김두관씨가 오더라구요. 2004년 총선 때도 노대통령이 들어오라고 해서 청와대 갔었는데요, 그 분이 '이번에 부산하고 경남만 다니지'라고 얘기하셔서 국회의원 선거기간 부산, 경남 뺑글뺑글 돌았는데 전원 떨어졌었습니다. 그래 김두관 후보 다시 만났는데 '그래, 몇 번 떨어졌어요?' '일곱 번 떨어졌지요' '노무현후보는 몇 번 떨어지셨죠?' '네 번 떨어졌죠.'
올라가서 그 얘기를 했습니다. '정치인 노무현 지역대결구도와 자기 머리 짓이기며 싸우다 결국 자기 머리 깨져 세상 떠났습니다. 노무현이 걸었던 길 옳다고 여기 김두관 후보 일곱 번 떨어졌는데 또 나왔습니다. 노무현 한 사람 목숨으로 부족합니까? 그럼 또 죽이십시요. 뭐 또 떨어뜨리면 되지.' 그렇게 얘기 드렸더니 청중들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됩니다.' 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참 제가 아둔합니다. 작년 5월 23일 봉하에 내려가서 연합통신에 보도된 유서를 봉하에 오신 분들에게 처음 읽어드렸습니다.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저는 당신이 저한테 신세졌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제일 마음에 남았던 것은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 오랜 생각이다' 저는 정말 아둔했죠. '어떻게 대통령을 지낸 분이 국립모지를 거부하실까?'
그런데 창원 공연을 끝내면서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겁니다. 2008년 마지막 뵜을 때 맥주 한 잔 하시면서 (그 분이 술에 약하시거든요. 술 두어잔 걸치면 얼굴에 알콜기가 올라옵니다.) '내가 왜 봉하에 내려 올 결심을 했겠냐. 내가 여기 내려오면 열린우리당이 전국정당이 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내려왔다. 그런데 공중분해되어 허망하다.' 그렇게 얘기하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 때서야 유서의 말이 그 말과 연결이 돼더라구요.
그 분이 오래 생각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국회의원 되고 2년 만에 3당합당 되고 난 후부터는 지역구도 깨는 것 밖에 생각한 적이 없는 분입니다. '집 가까운 데에 비석 하나 세워라'라는 뜻은 '나 죽어서도 전국정당화 하는데 내가 도움이 되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 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없지만 비석이라도 하나 있습니다. 참배하는 사람이 1년에 한 번 올 때 그 분들이 다시 한 번 그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 나라 망치는 지역대결구도를 극복하는데 각자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는 봉하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지난 6.2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습니까? 그가 몸을 던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 충격을 받아서 김대중 선생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역대결 구도가 그만큼 조금 완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지네들이 이겼다고, 2012년 4월 총선이 4년 전보다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이대로 가면 지네 30명, 40명 국회의원 늘어난다고 그냥 이대로 가고 싶다는 겁니다. '야, 이 개색기들아. 야, 이 십색기들아. 니들이 인간이냐?' 속에서 쌍욕이 나오는데 쌍욕을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참겠습니다. 내년 봄, 여름, 가을 그 때까지도 정말 말을 안듣는다면 '에이, 십색기들아' 저 인격파탄자되고 그냥 욕하고 죽을게요. (박수)
이 제안, 이 발상을 하면서 정말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단 국민여러분께서는 2012년 12월 대선 이전에 4월에 총선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십니다. 아까 여러분께서 대통령 선거에 이기자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대통령후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4월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는 한 12월 대선은 없습니다. 총선부터 이겨야 됩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모르고 계십니다. 거기다가 정치권에서는 가만히 가면 좋아서 빙글빙글 웃으며 냉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어떻게 제안을 드리고 퍼뜨려 나갈 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길거리 나간다. 자 대가리 박자. 그냥 한 분 한 분 만나서 이거 시간 없습니다. 일년 밖에 없습니다'라고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얘기하십니다. '가능하겠냐?" 이게 제일 많습니다. '안은 좋은데 가능하겠냐?' 말씀드립니다. 10만, 100만 모여서 우리 국민이 못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저께 지난 87년 유월항쟁을 하셨던 분들이 시민행동이라고 NGO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계시는데 그 분들이 야5당에게 연대기구를 출범시키라고 제안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승만 때부터 지난 수 십년 동안 그렇게 죽고 매 맞고 감옥 가면서 우리는 민주화를 위해 애썼습니다. 직선제 쟁취했습니다, 선거제도를 민주화했습니다. 그런데 선거제도에서 민주진보진영을 대의해야할 정당이 비민주적입니다. 민주당 역사 50년 동안 최악의 당헌당규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당이란 정당이. 서민, 시민을 대의할 정당이 반민주적인데 선거제도를 민주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노무현대통령이 당정분리한다고 했을 때 정당은 민주적으로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최악의 정당구조를 가진 정당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그러면 이제 뭘 해야되느냐 이겁니다.
김대중은 지역감정의 최대의 피해자였고 노무현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배출한 정당이라고 자임한다면 민주당 바깥의 민주진보진영 전체와 시민 전체와 함께 민주적인 정당, 전국정당을 만들어서 이 난국을 돌파하는데 자기들이 앞장서서 나서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유월항쟁에 앞장 섰던 주역들께서 마냥 바라만 보고 계시냐 이 말입니다. 지금이 연대를 제안할 때냐 이 말입니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진보 소통합, 진보 대통합, 빅텐트론. 다 좋습니다. 다 좋은데 문제는 뭐냐? 다 정당 지도부 간의 협상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는 시민의 세력이 차츰차츰 커온 역사입니다. 특히 촛불은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십만명이 몇 달을 촛불을 들었건만 저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그 때 길거리 토론회 하는 것을 보셨지 않습니까? 결론은 '어쩔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고 국회의 3분의 2가 극우가 잡고 있다. 어떻게 할 거냐? 우리 잘못이다. 여기서는 정당을 강화해서 선거에서 이기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이것을 집단 학숩한 것입니다. 지금 386이, 486이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들이 대학에서 집단으로 학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현상이 촛불에 있었습니다.
또 하나 노짱의 서거는 전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사건입니다. 어떤 지식인도 국민을 설득해서 받아들이게 할 수 없었을 것을 그냥 한 번에 모든 국민이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남긴 말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이것이 환경이 달라진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존경하는 대통령 여론 조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늘 거의 50프로였습니다. 노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처음으로 박정희 31프로, 노무현 30프로, 김대중 12프로로 조사가 됐습니다. 일 년 지나서 박정희 35, 노무현 25, 김대중 18이 됐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합쳐서 43퍼센트. 박정희 대통령을 넘어선 것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게 6.2선거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지역대결구도가 완화된 것. 또 하나는 삽질 공약에서 복지공약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반성. 뭐를 잘못했느냐? 서민이 왜 이렇게 힘들었느냐? IMF의 강요였지만 노동 유연성을 왜 충분히 막아내지 못했느냐? 한미 FTA는 왜 그렇게 서둘렀느냐? 복지는 왜 혁명적으로 늘리지 못했느냐? 이 부분에 대한 반성을 가지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 이제 국민은 분명히 다시 민주진보정부를 선택해 주실 겁니다. (박수)
진보대통합을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4당이 합쳐서 민주당과 힘대 힘으로 부딪히자는 얘기입니다.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2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연대하는 방법이 뭐냐는 겁니다. 결국은 여론조사입니다. 후보단일화 방법이 최선의 후보를 뽑는 방법이 방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은평을 재선거가 보여줬습니다. 최선의 후보를 뽑아도 탈락한 정당의 당원들이 매일 같이 운동을 안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선거운동이아닙니다 경기도 지사 선거가 보여줬습니다. 좋습니다. 그런 불리함을 안고라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세력으로서는 민주화를 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두 번째는 전국정당화가 안되기 때문에 영남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자고 주장하는 그 분들은 여전히 맨 땅에 헤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김두관 일곱 번, 노무현 네 번, 김정길 일곱 번, 송인배 다섯 번 떨어졌습니다. 이런 지역대결 구도를 그냥 둔 채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지속적으로 민주정부를 창출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까? 이거 안되는 겁니다.
여러분들 2002년에 활동한 분들 많이 계시죠? 8년 만에 또 나왔습니다. 왜 나와야 합니까? 우리 민주진보진영의 정당이 민주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데체 이렇게 말도 안되는 현상을 어떻게 참느냐 이겁니다. 어떻게 한나라당보다도 비민주적인 정당이 민주진보진영를 대변하고 있다라고 얘기할 수 있냐 이겁니다. (박수)
공격의 촛점을 거기다 맞추는 겁니다. 그 족쇄, 우리 나라 민주발전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민주당 세력의 반민주성, 이것을 깨는 겁니다. 집요하게 징을 치는 겁니다. '야 너희들 민주정당 맞어? 야 너희들 민주주의 하고 싶어? 그런데 왜 안해? 언제까지 안하고 있을거야? 너 국회의원 될라고? (그런 사람들 불과 30명, 40명 밖에 안되는데) 30명, 40명의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서, 편한 당선을 위해서 이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이렇게 발목 잡고 있을래? 너희들이 인간이야? 이 십색기들아! (박수)
거기에다 촛점을 맞추면 절대로 저항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하자는데 뭘로 거부할 거냐 이겁니다.
이제 두달 만에 2만 8천, 오늘 고양에서 칠백아홉 명 민란군을 맞이했습니다. 2만 9천, 3만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불리한 여건에 두 달 만에 3만 명에 이른 것은 우리 운동사에 제일 빠른 기록입니다. 이제 핵심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국민여러분께 대중화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제 민란이 시작됐습니다. 이것을 11월 13일 우금치 행사로 잡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할 참입니다. 횃불 150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참석하신 회원분들 중에서 '자 내가 부산의 접주가 되겠다. 대구의 접주가 되겠다. 광주의 접주가 되겠다.'라고 자원하는 분들 그 분들께 횃불에 불을 붙여서 하나, 하나 손에 쥐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150명이 전국을 향해 사방으로 동그랗게 서서 '제 고향으로 가서 들불을 붙이겠습니다.'라고 선언하면서 전국으로 그 횃불을 실어 나르겠습니다. 전국에서 들불이 붙을 때 간단합니다. 박정희, 전두환도 거꾸러뜨린 우리 백성이 왜 고작 정당 정도 못바꿀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야만 되는 일입니다.
여기 많은 분들 와주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이제 고민 끝에 좀 늦었지만 지역들불방을 열었습니다. 아직 11월 13일 행사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모르는 회원들이 많으십니다. 각 지역에서 임시 접주를 자임해 주십시요. 게시판에 내가 접주를 맡겠다. 자 우리 여기서 버스 한 대 출발하자. 이 지역에 사는 분들 여기 붙어 달라. 댓글 붙여 달라. 그렇게 해서 11월 13일 우금치에서 많은 분들이 만나서 우리 서로 뜻을 확인하고 그 힘을 받아서 전국으로 들불을 붙여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접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접주가 되주십시요. 그래서 우리 11월 13일 행사를 멋지게 치릅시다.
내년 초가 되면 당연히 2012년 선거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야권이 어떻게 연대할 거냐? 통합할 거냐, 융합할거냐가 화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가 되면 이 민란방식은 최선의 방식이라는 합의가 저절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두달 동안 여러번 토론을 해봤건만 이 안보다 나은 방안을 애기하는 분을 본적이 없습니다. 자, 내년초가 되면 확 의견이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꾸준히 의지를 가지고 군불을 때고 들불을 붙일 마음만. 의지만 가지면 일을 성공시킬수 있습니다. 여러분 접주가 되주십시요 그리고 십일월 십삼일 우금치에서 만납시다.
우리는 우금치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금치를 넘어 서울로 신의주로 그리고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자 같이 갑시다. 우금치에서 만납시다. 우금치에서 만납시다.
자, 제가 광주에서 술을 여러 잔 마신다음에 민란분 한분이 제안해서 건배사를 이렇게 했습니다. 제가 '대가리' 그러면 '박자' 이렇게 하자고 하더라고요. 이 일에 대가리 박자! 굉장히 좋은 구호라고 느꼈습니다.
'대가리~' '박자!'
이어서 라디오21에서 준비한 김대중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기념 북한우표와 이해찬, 유시민 등이 저술한 광주민중항쟁의 실상을 밝힌 '기억하는 자의 광주'를 장미 한송이와 함게 번개 참석자들에게 선사하였습니다.
배우 문성근은 책에 사인을 하며 민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시민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민란의 동지로 처음 만난 참석자들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민란의 꿈을 키웠습니다.
홍대 소극장에서 10월 한달 간 정치풍자극 아큐를 공연했던 여균동 감독과 배우 명계남도 찾아와서 민란 응원을 하였습니다.
사인을 마친 문성근이 시민들과 자리를 함께 하여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민은 민주당의 비민주성에 대한 공격이 민주당 지지자들을 이 민란운동에 등을 돌리게 하지 않겠냐는 우려에 대해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대체세력을 찾는데 민주당이 그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민주당 지지세력 전체가 갖고 있는 환상을 깨는 것이 올바르며 결국 민주당은 영남사람들도 호남당이 아닌 민주정당으로 인정할 수 있는 당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한 여성은 중병에 걸리신 아빠가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를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될런지 큰일이다'라고 하며 노무현 대통령 처럼 자신도 화장해 달라고 하고 올해 돌아가셔서 노무현대통령을 보면 아빠가 생각나고 아빠를 보면 노무현대통령이 생각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에 단호하셨던 아빠처럼 자신도 누가 뭐래도 옳은 것은 끝까지 옳다고 주장하고 싶으며 자신에게 역할을 준다면 민란에 도움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문성근은 고개를 숙이고 끄덕이며 묵묵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참석자들이 민란의 꿈을 다지는 가운데 민란 서울 번개의 밤은 깊어 갔습니다.
한 때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소리를 내는 지식인, 국민들의 머리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존경받는 어른이 어디 없나라는 의문과 아쉬움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그리고 SBS가 개국한 직후부터 시작됐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였던 문성근을 좋아했습니다. 시사고발프로그램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한 그의 똑부러지는 모습은 참된 지식인의 전형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몇 년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자진해서 그만 두었을 때 너무 아쉬웠고 그 이유로 그 프로로 인해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이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부담스러웠다는 얘기를 접하면서 설사 본인의 실제 모습이 진행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일지라도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사회의 어른과도 같은 그의 역할이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하차가 많이 아쉬웠고 그의 후속 진행자를 보면서 진행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었습니다.
(이후에 다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로 복귀했지만 그 동안의 공백과 타사의 유사프로의 영향으로 인해 처음과 같은 국민의 관심을 받는 진행자로서의 위상을 회복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여졌기에 계속 진행을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배우 문성근은 노무현을 눈물 흘리게 한 사람입니다. 노무현이 국민을 울리는 근본이유는 그의 진정성이 국민에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을 눈물 흘리게 한 그는 노무현에게서 진정성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민란 청문회를 했을 때 그의 발언이 이미 그에 대해 그릇된 선입견을 갖고 있던 한 패널에 의해 조중동식으로 왜곡되어 백만민란 자체가 특정 정치인 지지 음모로 비난받는 논란이 벌어졌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영화제 참석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던 내내 그 문제로 괴로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제를 자신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가 홍삼수 감독과 찍은 영화가 상연됐었습니다. 홍감독과는 먼저도 영화를 찍었으니 코드가 맞는 감독인 것 같습니다. 홍감독은 배우의 연기 및 인간상에 있어서 삶의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감독입니다. (홍감독이 어떤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다루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가 있겠지만) 그가 보여주는 위선적 또는 이중적 인간상은 배우 문성근이 스스로 고민한 문제와 맥이 닿는다고 보여집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반성할 줄 아는 인간입니다. 노무현 부류와 이명박 부류를 가르는 하나의 기준은 진정한 반성(反省)을 할 수 있냐, 즉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냐는 겁니다. 진정한 반성 속에서 진정한 신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대화는 반성할 줄 아는 사람들 간에서야 가능한 것입니다.)
극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영화 같다는 말을 합니다. 2002년 대선에서 국민은 한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그 영화에서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잃지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감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정치인이 보수언론의 왜곡과 기존 정치권의 따돌림 속에서도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됩니디.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관점에서 그 영화는 너무도 신나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 영화 속편이 만들어졌습니다. 속편에서 전편의 주인공은 상식과 원칙의 가치를 내세우고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으로서 노력하지만 기득권세력의 반발과 언론의 왜곡으로 많은 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됐으며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정치보복으로 인해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버립니다. 언론의 왜곡보도에 현혹되지 않은 국민들에게 이 영화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끔찍한 비극이었습니다.
이제 제 3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3편은 2012년에 완성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전편의 주인공과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국민의 마음을 얻어 현 정권의 견제세력이 됐으며 특권 없고 반칙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국민들에게는 이 나라의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돌리기 위해 반드시 민주진보진영이 정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진보진영이 단일후보를 내야한다는 쉽지 않은 문제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을 가질지, 암울한 결말을 가질 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배우 문성근은 이 영화가 행복한 결말을 갖도록 하기 위해 중요한 배역을 자임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면서 정치인들을 변화시키려면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작가들이 써준 대본을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종의 연기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에 고민을 하는 진행자가 아닙니다. 그가 하는 말은 그의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에서 나오는 말이며 지금 그는 누가 뭐래도 당당한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그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건 영화의 주제는 정해졌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행동하는 양심인 깨어있는 시민입니다. 이미 2002년 대선에서 시민의 조직된 힘은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2012년 대선에서도 시민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되자며 문성근이 먼저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민란의 첫 기획행사로 전국의 민란군에게 우금치에서 집결하자고 합니다. 우금치는 100여년 전 한성에 진군하기위해 공주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배하여 백성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한 동학민란의 꿈이 무너진 곳입니다.
행동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있읍니다. 백만민란의 꿈이 계속 커져가는데 있어 지금이야말로 민란군의 행동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2년 전 광화문을 촛불의 바다로 만들었던 분들에게,
그리고 명박산성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했던 분들에게,
노무현을 상식과 원칙의 아이콘으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노무현대통령 서거 때 분향을 위해 몇 시간을 추모의 대열에서 기다렸던 분들에게,
봉하에 내려가서 그의 비석 앞에 참배하며 그의 뜻을 되새겼던 분들에게,
민주진보진영의 정권 재창출을 간절히 바라는 분들에게,
야권통합을 위해서는 민주당의 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그러나, 그러나 민란은 아직 더 지켜보겠다는 분들에게,
잘되기를 바란다는 분들에게,
그 분들에게 문성근 식으로 말하겠습니다.
에이, 이 xx들아, 니들이 안나서면 누가 나서냐?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언제 제대로 발휘해 볼래?
11월 13일 우금치에서 꼭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100년 전 실패의 아픔을 딛고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에 새 장을 여는 민란의 본격적인 첫 걸음을 함께 힘차게 내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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