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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망할노무”는 내가 친숙하게 쓰는 표현이다.
또 저 “망할노무“란 표현은 나를 지칭할 때가 대부분 일 것이다.
망할노무...
노무...
저렇게 하찮은 말을 하면서도 나는 노무현 그 양반을 은연중에 떠올리는 것이다.
“사는 것. 그것이 뭐라꼬!!!“
화두 하나 남기고 스스로 사라지셨다.
그 하찮은 말, “뭐라꼬”를 생각하게 만든 그 양반.
저 양반에 대해 글을 더 쓰까?
그러나 나는 몬 쓴다.
가을이 깊었다.
망할노무 인사가 또 눈물바람 한다.
10년 전 내가 이 동네로 잠입을 할 시기만 해도 너 댓 집이 더 살고 있었다.
10호를 약간 넘는 동네에서 너 댓 집은 큰 숫자이다.
그사이 혼자서 살고 계시던 어른들이 돌아가셨다는 예기다.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삶을 영위하셨던, 이 동네에 역사가 되셨던 분들이 퇴각을 하시는 것이란 말이다.
내 친구인 유재호의 아버지 돈평 어른.
또한 친구인 종호 엄니 상면 할매
딸 부자집인 청계어른
흥의가 살고 있는 우리 일당들의 게스트 하우스로 쓰던 감나무 집의 보살 할매.
이 양반들은 차례로 돌아가셨고.
요즈음 유행가를 막힘없이 부르시는 팔십 후반의 청계 할매는 가을이 들어서고부터 기력이 딸려 따님 집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이제 동네에 남은 어른은 사진에 나오는 세 분 밖에 안 계신다.
구순이 다 된 나곡 어른 부부와 자질 할매.
이 세 분이 동네에 어른인 것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니 일에도 슬며시 염증이 나는 것이었다.
말을 못하는 흥의를 보고 나서자 라는 표현과 함께 나는 흐트러진 작업복 차림으로 동네로 나서는 것이었다.
늦은 가을 햇살이 반 뼘이나 남은 시간에 나는 앞서서 걷고 흥의는 뒤에서 느리게 따라오는 것이었다.
“저 망할노무 인사가 또 무슨 작당이란 말인가?”
말 못하는 흥의는 그렇게 의문점을 가지며 휘적휘적 따라왔지 않았겠는가?
“운 좋으면 나곡 어른 군불 때는 모습은 박을 것이다“
아무 날이나 사진기를 들고 나설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보니 “운”이라 표현을 하는 것이다.
토담집 오래된 굴뚝에서 솔솔 새어나오는 연기도 그럴듯할 것이고...
그러나 아직 시간이 일러 어르신은 손수 자르고 지게로 짊어 나르신 나무 손질만 하고 계셨다.


자질 어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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