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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가난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만 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는 젠틀 재인.
요즘 문재인님의 입모습이 어딘지 부자연스럽지요?
참여정부 때 청와대 들어가셔서
죽기 살기로 일을 하셔서
격무로 인해 1년에 10개의 치아를 잃으셔서 그렇답니다.
참여정부 사람들은 정말 목숨걸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재임 중 좋은 소리 한번 못 듣고...
하나같이 대장을 닮아 청렴하고 능력있는 분들인데.
위키백과에 나온 -젠틀 재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내다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네팔 산행 도중 노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듣고 달려와
변호인단을 꾸렸으며,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국정 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다.
윤태영 연설기획 비서관 등
핵심 참모진도 문 실장을 친형처럼 잘 따랐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왕수석'으로 불렸다.
문재인은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전 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수석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 동문은 한명도 없었다.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고 한다.
고교 동기인 고위 공직자가 文수석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 한다.
2006년 11월 6일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다.
문재인은 특전사 수중폭파조 출신으로
스킨스쿠버를 즐겼고 아무런 장비 없이 바닷물에서
해삼과 물고기를 잡아가지고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별봐라 산악회를 조직,
금정산 야간산행을 즐길 정도로 산을 사랑했다.
웬만한 들꽃, 들풀 이름은 식물학자 뺨칠 정도로 잘 안다고 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서 부산의 대선본부장 시절 중앙당에
공식 지원금을 요청하는 말을 꺼내는 데 30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아래는 -위키백과-에 나온 -허접 인규-에 대한 내용입니다.
출처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335168
그 작자의 ㅆㅏㅇ판은 올리고 싶지 않아서 안 올립니다..
-젠틀 재인-과 -허접 인규-의 살아 온 궤적이 얼마나 다른가...?
쉽게 말해 DNA가 다릅니다.
종자가 다른거지요.
노짱님과 MB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거시기하듯이
-젠틀 재인-과 -허접 인규-를 비교하는 자체가 무리지요?
검찰 특수부의 7개 보직 중 하나도 거치지 못했지만,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에 중용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수사를 지휘했다.
하지만 상관인 임채진 검찰총장의 지휘를 무시하고
보고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뜻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한편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인규 중수부장 밑에서 수사를 맡은 홍만표 기획관은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고가 회갑시계 선물이
조선일보등에 보도된 직후
'검찰 내 빨대(내부 취재원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색출해 처벌하겠다'
고 격앙되게 반응하였지만 흐지부지 끝냈는데
검찰 내에서는 당시 그가 말한
'더러운 빨대'가 자기 윗선이어서였다고 한다.
2009년 6월 12일 6개월에 걸친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5분만의 발표로 종결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는 '뇌물수수'로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를 내놓지는 않고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며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변호사는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책임 회피와 자기 변명으로 일관됐다고 비판했다
이 수사의 발단은 2008년 7월
국세청 한상률 전 청장이 관할이 아닌 조사4국을 시켜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후
박연차씨와 노 전 대통령 가족 간의 돈거래 내용을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하고,
현 여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등에 의한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은 뺀 채
청와대에 직보해 검찰 수사가 이뤄지도록 했다는 의혹이 있다.
한상률 전 청장은 2009년 초 해외로 도피했으며
검찰은 한씨에게 형식적인 이메일 조사만 했다.
태광실업 특별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박연차는 '의형제'인 천신일 회장에게 구명 로비를 요청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동기인 천신일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 당비 30억원도 대신 내준 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막후실세로 통하는 천신일 회장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의지 앞에 별 소용이 없었다.
2008년 12월
검찰에 구속될 때 원래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박연차는
지금까지 정관계 인사에게 현금이나 상품권만 주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다"
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검찰은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중인
외아들의 병역기록을 검토하고
태광실업 경영을 맡고 있던 장녀를 비롯한
세 딸과 사위를 출국금지하고 소환했으며
상속세를 탈세했는지 검토를 시작하자
결국 박연차 회장은 수사협조를 약속했다.
그러자 딸과 사위에 대한 출국금지가 풀렸으며
외아들의 병역문제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
참여정부의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문재인 변호사는 이인규 중수부장이 노무현 대통령 소환조사시
대단히 건방졌으며,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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