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3/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603/thumb/

home > 사진·영상 > 참여갤러리

참여갤러리여러분들의 사진과 영상을 공유 할 수 있습니다.

2012년11월7일&사람사는세상&도심올레&운현궁...

샹그릴라1225note 조회 1,296추천 12012.11.07

 

 

 

 

 

운현궁&궁궐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던 집

궁궐은 아니었으나 궁궐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던 집이다.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고종이 출생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26대 왕이 되는데 그때 나이가 12세였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다스리게 되니

이 집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만했다고 한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궁’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곳은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는데

담장의 둘레만도 수 리에 달했다고 하며,

고종이 머물던 창덕궁과의 왕래를 쉬이 하기 위해

운현궁과 이어지는 흥선대원군의 전용문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입구로 들어서면 이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머물던 수직사가 오른편에 있고

그곳을 지나면 노안당이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대원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껏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양반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해서 만들었다 하며,

처마를 이중으로 두르고 있는 보첨도 이 건물의 볼거리이다.

옆으로 이어지는 노락당은 운현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고종이 명성황후 민씨와 가례를 올린 곳이 바로 여기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이 있는데,

대원군의 부인인 민씨가 살림을 하던 곳이다.

밖에서 보면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듯 보이나

계단을 올라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가운데 중정이라는 ‘ㅁ’자형의 작은 마당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데

안채가 가지는 성격에 따른 폐쇄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이로당을 나서면 앞으로 작은 기념관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주장했던

쇄국정책을 알리는 척화비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등을 모형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펌)

이전 글 다음 글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9359 [RMH20110723] 나누는 기쁨,함께 하는 행복 (9) 방긋 2011.07.25
9358 벌금 우리가 낼께요..그냥 건너 오세요 ~! (9) 내마음 2011.07.25
9357 타래난초 (3) 김자윤 2011.07.24
9356 자귀나무 (5) 김자윤 2011.07.24
9355 나로도 축정 (4) 김자윤 2011.07.24
9354 닭의장풀 (7) 김자윤 2011.07.24
9353 나로우주해수욕장 (3) 김자윤 2011.07.24
9352 Canadian Rockie (5) 아쉬움만 2011.07.24
9351 [蒼霞哀歌 124] 봉하는 여름지나 가을로 고장없이 달립니다 (20) 파란노을 2011.07.23
9350 2011.07.23 토요일 완전한 모습으로 다가오신 대통령님 (27) 보미니성우 2011.07.23
9349 개구리자리 (1) 김자윤 2011.07.23
9348 언론 ‘거짓 홍보 쇼’ 탄로, 4대강은 울고 있다 (4) 아기곰1616 2011.07.22
180 page처음 페이지 171 172 173 174 175 176 177 178 179 180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