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508/dir make error!! /var/www/html/data/world/user_photo/202508/thumb/

home > 사진·영상 > 참여갤러리

참여갤러리여러분들의 사진과 영상을 공유 할 수 있습니다.

불편한 독서

소금눈물note 조회 916추천 262011.08.12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언제쯤이면 담담하게 마음을 속이며 편안한 독서가 될까.

아직은 힘들다.

그날을 생각하자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토요일 봄 저녁의 공단길. 다음날부터는 정신없이 밀려드는 추모인파에 공단은 커녕 한참 뒤 삼거리부터 통제되었다지만 그날은 정신이 없어 다들 멍한 상태였던지 거기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다.

끝도 없을 것 같은 그 길을 어찌 갔는지는 필름이 뚝 끊어진 것처럼 기억에 없다. 그냥 거기쯤에서 차에서 내렸던 것 밖에.


아직 분향소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마을 회관 마당 앞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서 있있었다. 누군가의 찢어지는듯한 통곡소리... 멍한 의식속에서 그를 바라보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몇몇이 또 주저앉고. 비명같은 욕설이 튀어나오고...


어둠이 짙어가는 천막속에서 기자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움직였다. 예전같으면 카메라를 들고 안하무인으로 설쳤을 그들에게 아무도 앞을 비켜주지 않았다. 개새*들 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 누군가 밭은 욕설을 내뱉었지만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공기는 바닷속처럼 무겁게 내려와있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울며 뒹굴든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날이 떠오른다. 대학 이학년 여름이었다.

그 전까지'오월광주'라는 것은 수상하고 불길한 소문에 불과했다.

시내는 순식간에 붙었다 떨어지는 전단지가 난무했고 시내는 언제나 최루탄냄새에 젖어있었다. 나는 무지했고 비겁했으므로 평화로왔다. 가난하고 바쁜 고학생이었다. 정신없는 아르바이트 사이로, 도서관의 책들을 다 읽고 졸업할 작정으로 더 바빴다. '데모'에 대해서는 이 세상이 많이 불의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난 애들이 고생을 하고 있구나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나는 아는 것도 없으니 이 자리가 족하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 열기조차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87학번 새내기였던 내가 뭔가 제대로 알기 전 봄이 지났고 6월이 갔다. 그리고 세상은 조용해졌다. 나는 여전히 평안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났다. 아르바이트로 여전히 바쁘던 이학년이었다.

처음보는 젊고 투박하게 생긴 국회의원이었다.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세련된 말투로 행간 짐작이 어려운 고급한 정치적수사를 미소를 띠고 카메라에 던지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말투는 높낮이가 크고 툭툭하고 뜨거워서 나를 저절로 화면으로 붙잡았다. 그는 너무나 달랐다. 온 나라의 초등학교 아이들도 그 이름을 다 아는 '회장님'이 청문회장으로 줄줄이 들어왔다. 어떤 국회의원은 그 회장님이 나가실때 얼른 쫓아나가 공손히 문을 열어드렸다고 했다. 행여 옥체가 상하실까 걱정이 되었나보다. '시대가 부른 위대한 소명을 발휘'하셨던 거룩한 가카도 들어왔다. 그들 아래서 잘 먹고 잘 살았던 방산업체 회장님도 가카의 호위대장도 있었다. 그때 보았다. 당신이 그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치고 정권의 비호아래서 배를 불릴 동안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달라고 싸우다 죽은 노동자들이 있다. 더러운 뇌물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동현장에서 사고를 당하고 유족이 된 가족들을 두고 떠난 사람들이 있다. 그는 분노로 입가를 떨며 그들을 질타하고...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를 그렇게 만났다. 분노와 눈물의 젊은 국회의원을. 그 노무현을.


찌를듯한 인기를 얻었지만 그의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시사주간지를 정기구독하며 그의 뒤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몇번이나 그는 표지의 인물이었고 그만큼 사랑을 받았지만 탈당을 거쳐 하로동선, 연이은 낙선... 우리가 다 아는 그 시절의 그는 그야말로 텅 빈 들판에 홀로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가 좋았다. 내가 아는 한, 내가 느끼는 한, 그가 어디에 있던 어떤 옷을 입고 있던 그는 처음 만난 그 청문회장의 젊고 뜨거운 국회의원의 모습 그대로였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열렬하게 그를 사랑하는구나 싶어 감격했다. 나 같은 얼치기 막연한 팬이야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지만.


2002년 내 생애 가장 뜨겁고 바쁘고 행복했던 해. 나 뿐 아니라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꼭 나와 같았다. 무언가 세상을 바꿔간다는 힘이 느껴졌고 그게 너무나 행복했다. 한번도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겼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지금은...아프다. 죄송하고 미안하고 아프다.

보지 말 걸. 사랑하지 말 걸. 그냥 그는 그대로 그의 삶을 평화로이 살고 나도 조용하고 비겁하게 그냥 이 세상을 건너가버릴걸... 뼛속까지 시리고 아프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들이 너무나 괴롭다.


문재인의 책을 읽으며 노무현을 생각하며 울다니.

미안하고 죄송한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에게 표를 주었던 그 겨울의 1인이었던 내가 이럴진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그의 가장 빛나고 외로웠던 생의 갈피를 함께 했던 지음의 벗이 감당하는 외로움과 고통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일까. 담담한 단문으로 짧게 끊어간 행간 사이에서 수시로 숨을 멈추고 두 사람의 화음을 바라본다. 문장은 화려한 수사가 없다.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공소문과 선고문의 낱말들처럼 너무나 단정해서 건조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 행간사이를 소용돌이치는 것은 그가 느끼고 우리 모두가 느끼는 그 마음이다.


시위로 제적이 되어 호송차로 끌려가며 본 어머니의 모습...지하철 안에서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눈물을 쏟으며 읽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리 먼 일도 아니었다. 내 앞의 선배들이 그런 고통을 겪어서 그 덕분으로 그 끄트머리에서 나도 짧은 학창시절을 보내며 그 비겁하고 평온한 시절을 보냈다. 늘 부끄럽고 미안해서 무엇으로라도 작은 손바닥이라도 얹어 온기를 더하는 마음으로 살자...그리 다짐하고 살았지만 그 부끄러운 기억이, 그 여름에 만난 한 사람의 뜨거운 육성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이것은 내 운명도 뭣도 아닌 그냥 그런 주절거림이지만.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나는 여전히 비겁하고 평온한 별볼일 없는 인간이므로 감히 무슨 다짐도 생각도 못하겠다. 누가 나 같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고 가르치고 할 것도 아니므로. 하지만 나는 그 봄 저녁 혼자 약속을 했다. 나는 상주다. 평생 상주다. 아무 보잘것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그의 사람들을 지켜주고 그의 뜻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주는 사람으로 살겠다. 아무 것도 없는 정말 별볼일없는 생이겠지만 어쩌면 그것 하나는 할 수 있겠다. 돈도 능력도 없지만 내 마음으로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는.

이것은 내 몫이다.




이전 글 다음 글 추천 목록
173 page처음 페이지 171 172 173 174 175 176 177 178 179 180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