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농사짓겠다고 내려온 사람을 그리 욕 보여가꼬.” “에이, 저거 바라 저 논에서 지금쯤 농사지으며 살고 있었을 낀데.”
60대 촌부 두 사람이 봉하마을 앞에 넓게 펼쳐진 논을 보며 한마디씩 한다.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고 나서 긴 한숨을 짓는다. 그곳을 찾은 이들은 안타까움을 담은 한숨을 나눴다. 1년이 지났는데도 그 안타까움은 계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다시 사람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아버지 향기 물씬 나는 촌부부터 아이 손을 잡고 노란 옷을 맞춰 입고 현장을 찾은 30~40대 가족, 구부정한 허리에도 씩씩하게 걷는 시골 할머니, 말끔한 양복차림에 검정색 넥타이까지 맞춘 신사부터 편안한 점퍼 차림의 아저씨들까지 모두 봉하마을로 봉하마을로 모여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져 서거한지 정확하게 1년이 흘렀다. 지난해 5월 봉하마을을 물들였던 노란색 향연은 그날의 슬픔과 분노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바닥에 편안하게 앉아 막걸리를 나누던 그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강조하던 그의 소신과 철학을 실천해야 한다는 다짐이 그날의 슬픔과 분노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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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1주기 추도식 참가자들 뒤로 보이는 부엉이바위.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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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객들이 봉화산에 올라 모내기를 기다리는 봉하마을 들녘을 바라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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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하루 종일 장대비와 이슬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가만히 앉아 쉴만한 곳도 마땅치 않는 그곳이었지만, 하루 종일 사람들은 말 그대로 물밀듯이 이어졌다. 봉하로 향하는 길은 이날 오전부터 사실상 주차장과 다름없었다.
봉하마을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한 것은 노란 풍선과 바람개비였다. “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노랑색 그리고 바람은 묘한 어우러짐이 느껴지는 조합이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장대비를 막아주던 노란색 우의도 그 어우러짐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추모객들은 그 비를 다 맞아가며 봉하마을 곳곳을 둘러봤다.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봉하마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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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정토원에 오른 한 추모객이 봉하마을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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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사자바위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가운데 세모꼴의 노무현 대통령 모역이 있고 오른쪽 아래부분이 추도식장소.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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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복원작업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된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도 조문객들이 방문하는 공간이었다. 본채에는 방 2칸과 부엌, 아래채에는 헛간과 옛날식 화장실이 자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억이 담긴 공간 때문이었을까. 한 30대 여성은 그곳을 둘러보더니 목 놓아 울었다. 남자 아이는 엄마가 왜 그렇게 슬프게 우는지 몰라 물끄러미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시민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목놓아 우는 모습은 지난해에도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가를 적셨던 또 다른 공간은 생가 맞은편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이었다. ‘시대는 단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추모의 집 입구에는 굴곡의 정치인생을 살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글귀가 방문객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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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앞에서 한 모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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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작은 촛불이 끊임없이 넘실댔다. 추모객들에게 관람료 대신으로 본인이 내고 싶은 만큼 내고 작은 촛불에 불을 밝혔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 사용하던 각종 물품도 전시됐다.
그를 상징하는 밀짚모자, 손녀와 봉하마을 들판을 달렸던 자전거도 전시됐다. 추모의 집 맞은 편 영상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다.
“광주에서 콩이면 대구에서도 콩이고 부산에서도 콩인 그런 세상….”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평생을 투자했던 그의 가치관이 잘 담긴 연설 내용이었다.
“지역감정 벽 앞에서 처참히 깨지고도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며….”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연설을 지켜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가가 붉어지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영상에 나오자 이를 지켜보던 이들의 눈가도 함께 붉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과 사의 갈림길을 선택했던 바로 그곳, 봉화산 부엉이바위와 남다른 인연이 있었던 ‘정토원’을 향해서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부산 경남 경북 등 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의 시와 글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전시됐다.
부엉이바위 쪽으로 오르기 전 사람들의 발걸음을 세우는 절절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급경사 오르막을 향해 나무 계단과 돌계단, 흙길을 오르고 또 올라 부엉이바위 주변에 도착했던 이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부엉이바위와 먼발치의 봉하마을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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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무현 대통령이 몸을 던져 서거한 장소인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추모객들은 기도를 올리고 눈물을 흘리고, 담배와 술을 올리기도 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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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엉이바위 아래 한 추모객이 탁주 한 사발과 담배 한 개비를 올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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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계속되는 비에도 불구하고 추모객들은 봉하마을 뒤 봉화산의 정토원과 산 정상까지 둘러보며 추모의 행렬을 이어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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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원에서는 이날 오전 노 전 대통령 추모 행사가 열렸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등 정치권 주요 인사들이 정토원을 찾았다.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가 왔다는 사회자의 안내가 나오자 절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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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뒷산 정토원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였던 송기인 신부가 추도사를 읽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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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원 수광전 오른쪽 벽면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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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원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한 민주당, 국민참여당 인사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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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원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가한 한 추모객이 합장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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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가 지역구인 최철국 의원은 추도사에서 “가뭄에 메마른 이 땅에 단 비로 내려오신 대통령님은 사람 냄새 나는 대통령이었다”면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기인 신부는 추도사에서 “민주주의가 뒤로 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절망으로 주눅 들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파도를 헤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토원 부근까지 산을 오르면 봉하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빗줄기가 안개가 돼 봉하마을을 휘감았다. 봉화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주변에는 공식 추도식이 열린 오후 2시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일찌감치 자리에 앉은 이들도 있었다. 그 비를 다 맞아가며 몇 시간 째 노무현 전 대통령 영상물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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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비가 쏟아지고 추도식장 바닥이 진흙탕이 되어도 아랑곳않고 추모객들의 발길은 이어졌고 봉화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많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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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중립은 검찰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참여정부 집권 초기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함께 검사와의 대화를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음성이 영상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 영상을 보면서 입술을 굳게 다문 이들부터 고개를 떨군 이들까지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오후 2시, 비는 야속하게도 추도식이 열리는 그 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좌석 대부분을 노란 우의가 물들인 그 공간에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씨 등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현장에 모인 이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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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동 씨가 비를 맞으며 추도식 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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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도식 사회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담당했다. 양복 차림에 검정색 넥타이를 맨 김제동씨는 우의도 걸치지 않은 채 차분한 목소리로 추도식을 이끌었다. 애국가로 행사의 시작을 알리더니 광주 5·18 30주년 행사장에서 ‘금지곡’이 돼 논란이 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노래 두 곡이 계속 이어졌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가사와 그 노래가 잔잔하고 웅장하게 울려 퍼질 때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씨가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추도식 내내 권양숙 여사 바로 곁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1년 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눈물의 추도사’를 전했던 그는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로 지방선거에 나섰다. 이번에는 추도사를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대신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꽃이 진 뒤에야 비로소 봄이었음을 알았다”면서 “바보 노무현, 백배 천배 죄 많은 자는 웃고 있는데 나를 버려야 한다면서 떠나갔다”고 말했다.
도종환 시인은 추도문을 통해 “다시 시작하겠다. 벽 앞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정의롭게 살아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만이 역사를 변화시킨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뜻을 받들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영화배우 명계남씨와 문성근씨는 묘역 주변에 시민의 후원으로 깔린 박석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며 복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농사짓는 사람 그대로 두지’ ‘자연의 한 조각으로 다시 만나길’ ‘다 버린 당신께 내 마음을 드린다’ ‘바람개비가 돼서 바람을 퍼뜨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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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명계남, 문성근(왼쪽부터)씨가 추도식에서 박석글귀를 낭독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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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시인이 추도문을 낭독하는 중에 고 노무현 대통령의 딸 노정현, 아들 노건호, 부인 권양숙 여사는 끝내 참지 못한 울음을 터뜨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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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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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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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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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안치환의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배경 음악과 함께 문성근씨와 명계남씨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절절한 사연이 담긴, 눈물의 이야기가 담긴 박석의 사연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노건호씨는 유족대표 인사를 통해 “1년 전 오늘 비통한 그날이 생각난다. 검찰출두에 앞서 버스를 타기 전 카메라 세례가 생각난다”면서 “믿어지지 않는 비극이었다. 당신이 걷고자 했던 그 길을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공식 추도식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 됐다. 언론에 패배하더라도 비굴하게 굴복하지는 않겠다던 대통령. 그 언론들은 1년 전 반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년 후 그 언론들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인격살인’ 보도는 계속됐다.
서울에서 왔다는 박광웅(36)씨는 “전직 총리(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그 정도로 당했다면 일반 국민은 얼마나 더 이미 권력이 돼 버린 언론의 탄압을 받았겠는가”라면서 “언론은 1년 전에도 지금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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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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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바닥을 장식한 박석에 새겨진 시민들이 헌정한 문구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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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를 업고 큰 아이는 뒤에 함께 줄을 선 한 가족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에 헌화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줄을 섰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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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골이 안장된 곳 위에는 '대통령 노무현' 여섯글자가 새겨진 너럭바위가 놓여졌고 추모객들이 그 위에 헌화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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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인근에서 온 추모객들이 추도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트럭위에 몸을 실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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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언론사에 맞서 할 말을 했던 몇 안 되는 정치인, 그는 세상을 떠난 후 지금까지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과제를,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봉하마을을 끝없이 적셨던 그 빗줄기는 밤이 다가오면서 잦아들었다. 이날 새벽부터 그 빗줄기를 다 맞으며 자리를 지켰던 수많은 사람은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봉하마을을 나섰다. 그들의 빈자리는 또 수많은 시민의 발걸음이 채웠다.
누군가가 떠난 그 자리만큼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봉하마을로 봉하마을로…. 그들의 발걸음은 어떤 의미일까.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봉하마을=류정민 기자, 사진 이치열 기자